바로가기 메뉴 » 메뉴 바로가기
  • 처음으로
  • 시각장애인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

주메뉴

  •  
  • 민주공원소개
    • 민주공원
      • 조성목적 및 연혁
      • 조직 및 업무
      • CI 및 캐릭터
      • 찾아오시는길
      • 경영공시
      • 경영공시
    • 공원시설
      • 민주공원안내
      • 내부시설
      • 외부시설
    • 대관,단체방문
      • 대관서비스
      • 단체방문
    • 알림마당
      • 공지사항
      • 보도자료
      • 자유게시판
      • 공연,전시일정
      • 소식지(웹툰)
      • 뉴스레터
      • 민주앨범
    • 교육문화마당
      • 체험학습자료
      • 영상자료
    • 민주열사
      • 학생운동가
      • 재야운동가
      • 노동운동가
      • 장기수
    • 후원회원
      • 후원하기
      • 나의 후원이야기
  • 민주주의 아카이브

민주공원. 민주공원에 관련된 공웡시설 및 대관, 닽체방문 등의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알림마당
공지사항
보도자료
자유게시판
행사/공연일정
소식지(웹툰)
뉴스레터
민주앨범

뉴스레터

처음으로 > 민주공원 > 알림마당 > 뉴스레터
제목 일제시대 군사 흔적을 찾아서
번호 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24 오후 3:49:56 조회수 3602 회
다운로드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
- 일제시대 군사 흔적을 찾아서 -
이보름(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가덕도의 토치카를 보기 위해서는 물때를 맞춰야한다. 토치카가 가덕도 대항 해안가에 있어 썰물이 되어야 건너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한 물때에 맞춰 가덕도 외양포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도 없어 두 번째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은 날짜를 잡기도 어렵고 적당한 크기의 차량을 구하기도 어렵고 함께 기행을 떠나고자 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죄송했다. 그런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봄날의 햇살이 따뜻한 4월9일 토요일 오후, 15명의 시민들과 함께 드디어 가덕도로 출발한다.
외양포로 가는 길은 홍순연 박사의 우려대로 25인승 버스가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슬아슬한 길이었다. 15인승 봉고가 겨우겨우 힘겨워하며 언덕을 넘어가니 깜빡 졸던 사람들도 번쩍 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터널처럼 언덕길을 넘어가니 횟집과 민박도 보이지 않고 몇몇 가구들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작은 마을, 외양포 마을이 나타났다. 집들이 서로 담으로 구분해두지 않고 집 앞 작은 텃밭에 담을 대신해 상추, 감자, 고추 등을 심어두어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평화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1904년 외양포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임시 군사기지로 설정하여 민가 64호를 강제 퇴거시키고 러시아함대와 해전을 대비한 군사기지였다.
외양포는 1905년 진해만요새 사령부가 옮겨와 대대 규모 이상의 포병부대 주둔지로 확대되고 이는 1909년 마산으로 사령부가 이전되기까지 이어진다. 1914년에는 진해군항으로 사령부가 이전하면서 외양포 요새는 중포병대대 주둔지로 격하되어 1945년 일본 패망까지 유지되다 광복 후에야 비로소 이주민들이 들어와 군막사 등의 시설을 개조하여 현재까지 살고 있단다. 현재 외양포 마을에는 일제시대에 구축한 군사시설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총 30개소 있으며 막사 14개동, 창고 8개동, 우물 및 기타 구조물 8개소, 포진지 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포진지 입구로 들어서니 특이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데 공동화장실이란다. 중국의 칸막이 화장실을 상상하면 “아!”하는 깨우침이 들면서 화장실 규모가 작지 않은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 했구나 싶었다. 포진지 안에는 엄폐막사 2개소, 탄약고 3개소와 탄약고 사이에 2개씩 포좌를 설치하여 총 6문의 280mm 유탄포를 배치했다고 하는데 홍순연 박사가 마을주민들이나 여러 전문가들을 인터뷰해보니 280mm 정도의 유탄포를 발사할 수 있을 정도의 진지 크기가 아니라 포병을 훈련하는 훈련기지가 아닐까 추정하지만 아직까지 연구된 기록은 포진지로 기록되어있어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막사와 탄약고는 진입구를 제외한 사면을 구릉으로 처리하고 상부에 대나무와 잔디 등을 심어 은폐하였다. 맞은편에는 엄폐막사가 있는데 언덕모양으로 된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꼬마들이 그림을 그려놓은 듯 네모난 창문을 그려두었다는 것이다. 군사시설이라도 어느 정도 미적 감수성을 가지고 구축한 것일까? 게다가 당시로서는 가장 튼튼하게 건축하는 형태였던지 콘크리트에 자갈을 섞어 단을 만들고 그 위를 벽돌로 덮고 또 흙을 덮고 대나무와 잔디를 심었다. 1904년 연내에 모든 구조물을 건축했다는데 모르긴 몰라도 당시로서는 엄청난 공사였음이 분명하다.
포진지를 둘러보고 뒤쪽으로 난 산길을 올라갔다. 좁은 산길을 한참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콘크리트 줄기초만 남아있었는데 일본군이 군사시설로 설치하여 화약고로 사용한 곳이라고 한다. 줄기초를 둘러싼 석축의 우측면은 화강석 석축이 있었는데 원래는 나머지 사면도 화강석 석축이 쌓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변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무너진 석축이 남아있었다. 산을 여기저기 둘러보면 길이 아닌듯한 좁은 산길이 있고 그 끝에는 꼭 공터가 있어 무언가 일제시대 군사시설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데 당시 화약이 중요한 군사물품이었기 때문에 사방으로 석축을 쌓아 쉽게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도 오래전부터 이런 흔적들을 알고 있었다지만 정확하게 어떤 시설이었는지는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 이곳 외양포는 일제가 떠나가고 우리 해군이 관할하여 아직 군사지역이다. 따라서 지역주민들도 해군지역에 얹혀 살아가는 입장이라 적극적으로 일제시대 군사시설에 대해서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내려와 마을을 둘러보았다. 현재는 마을 주민이 살고 있는 집 같았는데 ‘사령관실’이고 ‘병사’라고 했다. 물론 증축도 되고 변형되었지만 큰 기본 틀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식수를 위해 우물도 곳곳에 남아있었는데 현재는 마을 주민들이 생선을 손질할 때나 가끔 사용한다고 한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여기저기 일제시대 흔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라 더 기행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토치카를 보기위해 대항으로 이동하면서 들으니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 이곳 외양포가 포함되어 있어 아마도 공사가 본격화되면 이 흔적들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항으로 넘어가는 언덕 옆에는 도로공사가 한참이다.
물때를 30분정도 늦어 서둘러 해안 길을 따라갔다. 10여분을 울퉁불퉁한 돌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니 인공동굴이 보인다. 당시 일본은 해안을 따라 동굴을 파서 토치카로 활용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꽤 넓어 충분히 무기를 숨기고 충분히 병사들이 생활할 수 있을만했다. 그래서인지 일부 지역에서는 전쟁이 끝난 한참 후까지 토치카에 병사들이 일제의 패망을 모른채 남아있었다고 한다. 제주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덕도에서 이렇게 토치카의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인데 어떤 곳은 파다가 실수했는지 중도에 그만 둔 곳도 있고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는 곳도 확인할 수 있다.
외양포와 토치카를 모두 둘러보고 마지막에 나눈 이야기는 역시 “이런 근대건축 유산을 어떻게 하면 지켜낼 수 있을까?”다. 모두의 편의를 위해 공항을 만들더라도 역사의 흔적을 표지석 달랑 하나 남기고 없애버리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부디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일제시대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길 기행에 참여한 모두와 함께 빌어본다.





총 120 건의 게시물(12/12)
흑인 여성 예술가로 살기 2016-06-13
흑인 여성 예술가로 살기 -나는 예술가입니다. 미국의 흑인 조각가 에드모니아 루이스(Edmonia Lewis, 1845~1911년경)는 자신의 조각 작품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북미 유색인종 미술가로서, 치퍼와족 인디언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오벌린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대학교는 1835년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입학을 허용한 사립 인문대학이었다. 루이스는 1860년대에 로마로 가서 다른 망명 미술가 및 작가들..
사료실에서 만난 후배 2016-05-24
사료실에서 만난 후배 박향란(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참이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때가 어느덧 30여 년 전. 요즘 그 아이를 사료실에서 문득 문득 다시 만난다. 필자가 대학 3학년 때 시 좀 쓴다는 1학년 후배가 들어왔다. (여기서 들어왔다는 말은 교내의 범문학사회를 말한다.) 키 크고 잘생긴 아이, 수줍던 아이, 착했던 아이, 볼이 잘 붉어지던 아이, 고민 많았던 아이, 이마에 떡하니 ‘나 감..
일제시대 군사 흔적을 찾아서 2016-05-24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 - 일제시대 군사 흔적을 찾아서 - 이보름(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가덕도의 토치카를 보기 위해서는 물때를 맞춰야한다. 토치카가 가덕도 대항 해안가에 있어 썰물이 되어야 건너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한 물때에 맞춰 가덕도 외양포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도 없어 두 번째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은 날짜를 잡기도 어렵고 적당한 크기의 차량을 구하기도 어렵고 함께 기행을 떠나..
군대문화 속에서 알바노동자로 살기 2016-05-11
군대문화 속에서 알바노동자로 살기 알바노조 부산지부 사무국장 서나래 내가 겪었던 군대문화 중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대학 단대에서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주관하는 행사에서 겪은 일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동기간의 친목 도모를 명목으로, 진 학과에는 벌칙을 주는 게임(?)이 진행됐다. 그리고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우리과 동기들은 시작도 전에 엎드려뻗쳐를 해야 했다. “놀러 왔어!?”라고 묻는 선배의 말에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네”라고..
청년이 바라보는 꼰대문화, 꼰대와 아재의 한 .. 2016-05-11
청년이 바라보는 꼰대문화, 꼰대와 아재의 한 끗 차이 - 엄다인 (부산민예총 사무활동가) 어느 청춘영화에서 방황기 고등학생이 재력가 아버지를 ‘우리 꼰대’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 ‘꼰대’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학생들은 주로 학생주임 선생님을 꼰대라고 불렀고, 회사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를 ‘꼰대’라고 부른다. 꼰대는 지나친 권위를 가지거나 내세우는 중년의 사람을 말한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의 저속한 표현’,..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적기 마을 2016-03-23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 - 적기 마을과 소막 마을 이야기 - 이보름(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나락한알 프로그램이 늘 그렇듯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도 갑자기 제안된 프로그램이었다. 상지건축연구소의 홍순연 박사와 나락한알의 김동규 부원장이 만나 이야기 중에 튀어나온 “부산에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을 ‘건축’을 소재로 시민들과 함께 찾아가 보면 어떨까?”하는 한 마디에서 출발하여 2월13일 토요일, 20명의 ..
유디트로 남겨진 최초의 여성화가 2016-03-22
유디트로 남겨진 최초의 여성화가 박병률(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 이것은 단지 여성에게뿐 아니라, 그리고 사회적, 윤리적 이유에서뿐 아니라, 순전히 지적인 이유에서도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면, 그 말은 우리 사회 제도에서는 물론 학술 연구 영역에서도 통할 것이다. 서구 백인 남성의 관점, 무의식적으로 미술사의 공식 관점으로 ..
잠수함 속의 토끼-홍성담의 봉선화 연작 2016-03-16
봉선화 꽃물을 들이던 조선의 소녀가 일제에 끌려가서 강간당하고 참혹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연작으로 보여주고 있는 홍성담의 작품은 그림의 틀을 빌고 있되 그림틀을 뛰어 넘는 통감각에 호소하고 있다. 위안부의 생애는 봉선화 꽃물 들이는 한 소녀의 이야기줄기로 다듬어지고 봉선화 노래말소리에 얹혀 귀를 불러낸다. 이 쓰리고 아린 촉각적 시각, 시각적 촉각을 제 눈으로 제 몸으로 오롯이 받아들이고 견뎌내야만 봉선화는 다시 피어날 수 있다. 신용철(민..
사료는 살아있다-우연히 찾은 반가운 노래 2016-03-14
지난여름 미분류 자료 정리를 도와주던 김 선생과 먼지구덩이에다 얼어 죽을 것 같던 자료실을 잠시 벗어나 점심산책을 나갔다. 개망초가 우르르 피어있는 따뜻한(?) 산책로를 걸으며 촌에서 자란 김 선생이 해 준 얘기는...어린 시절 하동 집 앞 섬진강둑에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면 망자(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사람) 위에다 수북이 꺽은 꽃을 하얗게 덮어서 장의사 놀이를 하는데 자기가 술래가 되면 36계 줄행랑을 쳤대나 뭐래나. 그 얘기를..
민주공원에 얼음새꽃이 피었습니다. 2016-02-24
민주공원에 '얼음새꽃'이 피었습니다. 일명 복수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복수초(福?草, フクジュソウ, 후쿠쥬소-)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을 한자말로 우리가 따다 부르는 것이라고 하네요. 앞으로는 '얼음새꽃'이라고 불러주세요. 부산에도 봄이 왔습니다.^^
처음  [1] ...   10.   11.   12.   마지막

해당 컨텐츠를 보시려면 Flash Player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