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 메뉴 바로가기
  • 처음으로
  • 시각장애인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

주메뉴

  • 민주공원소개
    • 민주공원
      • 조성목적 및 연혁
      • 조직 및 업무
      • CI 및 캐릭터
      • 찾아오시는길
      • 경영공시
    • 공원시설
      • 민주공원안내
      • 내부시설
      • 외부시설
    • 대관,단체방문
      • 대관서비스
      • 단체방문
    • 알림마당
      • 공지사항
      • 보도자료
      • 자유게시판
      • 공연,전시일정
      • 소식지(웹툰)
      • 뉴스레터
      • 민주앨범
    • 민주열사
      • 학생운동가
      • 재야운동가
      • 노동운동가
      • 장기수
  • 민주주의 아카이브

민주공원. 민주공원에 관련된 공웡시설 및 대관, 닽체방문 등의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알림마당
공지사항
보도자료
자유게시판
행사/공연일정
소식지(웹툰)
뉴스레터
민주앨범

뉴스레터

처음으로 > 민주공원 > 알림마당 > 뉴스레터
제목 [사료와 인물]황보영국(1961.2.3~1987.5.25) 이야기
번호 2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02 오전 9:16:36 조회수 492 회
다운로드

올해부터 연재를 시작하고 있는 ‘사료와 인물’ 코너는, 지난 호에서 6월항쟁의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에 비해 덜 알려진 부산의 이태춘 열사를 기리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또 한 명의 부산 6월항쟁의 열사 황보영국을 떠올려야 한다. 이태춘은 대졸 출신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다. 황보영국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블루칼라 노동자다. 내가 만약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화운동의 서열화가 몸에 내재화된 것은 아닌가? “불안한 양심”에 떨렸다. “나뭇가지 위에 얹힌 돌덩이처럼” 깨어 있는. 황보영국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황보영국은 노동자 가정의 4남 1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성지공업고등학교 2년을 중퇴하고 울산의 현대중공업과 부산의 삼화고무, 태화고무, 우성사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1987년 26세 청년 황보영국은 2월 7일 ‘박종철 추도대회’에 참여했고, 경찰에 연행되어 1주일간 구류를 살았다.
6월항쟁이 전국적인 규모에서 일어났지만 부산은 유독 더 뜨거웠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1987년 4월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열린 ‘광주항쟁 사진전’을 드는 이들이 많다. 사진전을 보기 위해 부산가톨릭센터 건물 밖을 넘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당시 ‘광주항쟁 사진전’에 대한 부산 시민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에는 없지만 ‘박종철 추도대회’에 참여한 황보영국의 민주적 각성을 보아 그는 당연히 이 사진전을 보았을 테다. 그것이 부산의 20대 청년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황보영국은 광주항쟁 7주년을 하루 앞둔 1987년 5월 17일 오후 4시 20분경 서면 부산상고(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 도로에서 몸에 기름을 붙고 라이터를 당겼다. 라이터를 당기는 순간 그의 손은 얼마나 떨렸을까!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복개천도로로 달려 나오면서 외쳤다.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 황보영국은 6월항쟁의 열사이지만 동시에 광주항쟁에 대한 부산의 ‘양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소위 운동권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홀로 외로이 자신의 양심을 지켜나갔고, 교회에 다녔다. 불덩이가 된 몸이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절규했다.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황보영국이 쓰러지자 인근에 있던 전경들이 뛰어와 다른 시민들이 보지 못하도록 그를 에워싸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주변 식당의 아주머니들이 소방호스를 들고 나와” 불을 껐고, 그는 119차로 백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황보영국은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의 상태에서도 붕대로 칭칭 감긴 손을 꿈틀거리며 ‘독재타도’를 신음처럼 외쳤”다.
열사의 분신 이후 경찰과 당국의 태도는 그들이 얼마나 이 사건의 파급력을 두려워했는지 보여준다. 경찰은 병원 측의 협조로 ‘면회사절’이란 팻말을 걸어놓고 외부 인사들의 문병을 통제했다. 황보영국은 1주일을 버티다 5월 25일 새벽 5시에 끝내 운명했다. 경찰의 협박과 회유로 가족들은 소식을 듣고 찾아간 민주인사들의 접근을 거부했다. “‘개인적인 문제이다’, ‘영국이는 친구가 없다’,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 ‘경찰이 수고를 많이 한다’”고. 심지어 25일 부고를 듣고 달려간 인사들에게 이미 화장했다고 거짓을 말하고, 다음날인 26일 경찰의 의도대로 몰래 화장했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에서는 장례 이후에도 수차례 집으로 찾아가 열사의 기록물을 찾기 위해 애썼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깨끗이 치워버린 상태였다.
최근 황보영국 아버지의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경찰들이 매일 같이 2~30명씩 찾아오고” “우리(경찰) 얼굴을 봐서라도 시킨대로 해달라”고 했다 한다. 아버지는 “남은 4명의 자식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른 자식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전전긍긍해 온몸으로 불의의 시대에 항거한 아들의 뜻을 감추려고만 했다.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 싶다. 아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장례식 이후 한 말씀을 청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볼 낮이 없어서 나서지 못했다.”

황보영국의 분신은 1987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내건 항거는 이후에도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대기업 노동조합원도 아니었다. 홀로 각성한 평범한 민주청년이었다. 그의 삶도 죽음도 홀로 벌이는 외로운 사투였다. 그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우리의 기억 속에서 함께 하기를. 기억 속의 황보영국은 6월항쟁에 갇혀있지 않다. 그는 광주항쟁에 대한 ‘부산의 양심’이다.


최은정(민주공원 사료 담당.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

<참고 사료 및 인터뷰 자료>
「호외」(부산민주시민협의회, 1987.5.19)
『민주시민』13호(부산민주시민협의회, 1987.5.31)
「26세 분신 노동자 황보영국: 가족 괴롭힌 압박?회유」(『헤럴드경제』, 2017.6.6)





총 26 건의 게시물(1/3)
6월민주항쟁 31주년 기념사 2018-06-11
뜨겁게 맞잡은 손, 민주로! 평화로! 여러분 반갑습니다. 6월 민주항쟁 31주년을 맞아 그 뜻을 되새기고 함께 나누기 위해 참석해주신 많은 지역의 활동가들과 부산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31년 전 6월, 우리는 엄혹했던 군사독재에 맞서 불의에 대한 분노와 민주의 열망이 함께 만들어낸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독재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의 시대로 역사의 시계를 돌려놓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항쟁의 중심에서는 항..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 2018-02-28
성명서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부실 보고서(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2월 23일 이른바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구하는 보고회를 개최하였다. 이 보고회에 참석한 우리 4개 단체를 포함한 많은 관련자와 시민들은 3년 반에 걸친 위원회 활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보고서(안)가 부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헌법]헌법 전문에 부마항쟁, 6월항쟁 등.. 2018-02-20
[국민헌법]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 6월항쟁 등 역사적 사건을 명시합시다. 현행 헌법의 전문에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https://www.constitution.go.kr/main/caView?number=1
2018년 수학능력시헙 한국사 마지막 문제 2017-12-11
2018년 수학능력시헙 한국사 마지막 문제입니다. 민주화운동 관련해서 출제가 되었습니다. 정답은 아시겠죠? 1987년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그 해 야당을 비롯 당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 하면서 시위를 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그 해 4월 13일 헌법을 그대로 한다는 호헌 조치를 선언합니다. 당시 헌법은 선거인단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제였습니다. 호헌조치와 더불어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
[사료와 인물]황보영국(1961.2.3~198.. 2017-11-02
올해부터 연재를 시작하고 있는 ‘사료와 인물’ 코너는, 지난 호에서 6월항쟁의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에 비해 덜 알려진 부산의 이태춘 열사를 기리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또 한 명의 부산 6월항쟁의 열사 황보영국을 떠올려야 한다. 이태춘은 대졸 출신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다. 황보영국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블루칼라 노동자다. 내가 만약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화운동의 서열화가 몸에 내재화된 것은 아닌가? “불안한 양심”에..
부마민주항쟁 38주년 기념사 2017-11-02
부마민주항쟁 38주년 기념사 오늘 제 38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함께 자리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38년 전 부산과 마산의 시민들이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그 날의 함성이 지금도 생생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박탈당한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부마항쟁은 이후 한국 민주주의 초석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과 마산 시민들의 투쟁은 유신체제를 종식시키는 결정적 ..
민주주주의 심장, 부산이 다시 뜁니다! 2017-06-15
[기념사]민주주주의 심장, 부산이 다시 뜁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6월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그 뜻을 되새기고 함께 나누기 위해 참석해주신 많은 지역의 활동가들과 부산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들은 분단과 전쟁의 고통을 헤치고 독재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이러한 항쟁과 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민주 부산, 부산시민들이 있었습니다. 4.19혁명은 물론, 박..
정부 부마위원회의 위원 사퇴와 보고서 작업 .. 2017-04-26
우리 4개 단체는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구성, 운영 및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바이며 이에 대하여 귀 위원회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 박근혜 정부의 편파적이고 비민주적인 임명과 위촉으로 구성된 현재의 위원들은 전원 사퇴해야 합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약칭: 부마항쟁보상법)에 따르면 당연직으로 포함되는 행정자치부장관, 부산광역시..
6월민주항쟁 30년 부산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하.. 2017-04-17
6월민주항쟁 30년 부산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하며 오늘 우리는 87년 6월항쟁 30년을 맞이하며 ‘촛불시민혁명’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은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시켰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얽히고 쌓인 더러운 적폐의 내용과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습니다. 또 국민들은 이러한 적폐 구조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나누어 왔던 세력들의 뻔뻔한 속살과 이들에 부역해 왔던 세력들의 초라한 민낯을 낱낱이 보고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동참 거부’와 ‘위원직.. 2016-11-01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동참 거부’와 ‘위원직 사퇴’를 하며 박근혜 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대한 의지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부마위원회) 2기의 출발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에 대한 이 정부의 의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답이다. 지금 우리는..
이전   1.   2.   3.   마지막

해당 컨텐츠를 보시려면 Flash Player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