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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적기 마을
번호 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23 오후 5:34:18 조회수 18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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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
- 적기 마을과 소막 마을 이야기 -

이보름(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나락한알 프로그램이 늘 그렇듯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도 갑자기 제안된 프로그램이었다. 상지건축연구소의 홍순연 박사와 나락한알의 김동규 부원장이 만나 이야기 중에 튀어나온 “부산에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을 ‘건축’을 소재로 시민들과 함께 찾아가 보면 어떨까?”하는 한 마디에서 출발하여 2월13일 토요일, 20명의 시민들과 함께 ‘우암동 적기마을과 내호냉면’을 주제로 드디어 그 첫 걸음을 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보슬비가 슬금슬금 내리는데다 안개까지 가득해서 건너편의 부둣가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20명의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미로 같은 마을 골목을 다니며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만동, 우암동이라면 익히 들어본 동네일 테지만 ‘적기 마을’이라면 다소 생소하다. ‘적기(赤崎,아까사끼)’는 일제강점기 때에 감만동과 우암동 일대를 부르던 이름으로 1980년대 초까지 이 일대를 적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왜 하필 ‘붉은 적(赤)’을 쓴 ‘적기(赤崎)일까 했더니 뒷산(홍곡산)이 황토 산이어서 멀리 바다에서 보면 전체가 붉게 보여 적기라고 했단다. 지금은 부두나 집들이 먼저 보이겠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산에 나무도 없고 부두도 없어 보이는 것이라곤 ’붉게 돌출되어‘ 보이는 황토 산뿐이었을 것이다. 이제 적기 마을이 있었던 이 일대에 제7부두, 제8부두가 들어서고 대성제분, 대한통운창고, 세방기업, 우암컨테이너부두 등 회사나 물류창고 등이 들어서 옛 모습을 모두 찾을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축사검역소시설을 마련하고 형성된 ‘소막마을’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을은 광복 이후 축사검역소시설인 우사 19동, 사료조리동 7동을 해외 귀환동포들이 점유하며 초창기 피난마을을 형성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면서 ‘소막마을’, ‘우암시장’을 형성하고 1963년에는 필지를 가구별로 분할하여 거주민들에게 적산(敵産)을 불하(拂下)한다. 80년대에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필지만큼 소 막사를 철거하거나 증축, 개보수를 진행하였으나 아직도 소 막사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집이 많다. 지금도 이곳 주변에는 폐쇄된 우물이 3개정도 남아있는데다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공용화장실이 8개가 있다. (물론 지금의 공용화장실은 깨끗하게 정비되어있다.)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당시, 소 막사까지도 집으로 개조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 지역은 포구와 가까워 생계유지가 가능한 곳이라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70-80년대에는 5평 남짓한 공간을 1,2층으로 나누어 1층에는 주인집 다섯 식구가 살고 공장 노동자 다섯 명에게 2층을 세주어 살았다. 그때는 골목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여 지금처럼 집들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당시 피난민들은 부두에서 일하고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부지런하게 돈을 모아 대부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고 이제는 빈집만 남아있다. 그 빈집들 사이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쓸쓸할까? 그 쓸쓸함 때문인지 생활의 불편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재개발을 원하고 있다 한다. 하지만 재개발 되고나면 사라질 근대건축유산이라, 설명해주시는 홍순연 박사님은 당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주민들의 주거환경도 개선될 수 있는 방법으로 재개발을 고민해야한다는데 아직은 어떤 방법이 좋을지 나로서는 잘 상상되질 않았다.

비가 내리는 마을을 한 시간 남짓 돌아보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밀면이 개발되었다는 ‘내호냉면’에서 밀면을 먹으며 기행을 마무리 했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지만 벌써 4대째 변함없는 맛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식당이라 사장님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북한 함경북도에서 냉면 장사를 하다가 부산으로 피난 와서 할 수 있는 일도 역시 냉면 장사였다고 한다. 전쟁 통에 물자가 귀해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냉면이 아닌 ‘밀면’을 팔아 우암시장 한켠에 자리한지 벌써 60여년. 이제는 내호냉면은 시장의 역사가 되었지만 비가 내려서인지 너무나 한산한 시장 모습이 마을을 떠나고 있는 주민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기행을 마치면서도 왠지 안쓰럽다.

※ 나락한알의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은 4월에는 ‘가덕도 외항포와 토치카’를 주제로 기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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