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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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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사진
  • 이름: 강경대
  • 당시 나이: 20
  • 91년 4월 24일 상명여대의 학자집회를 지지 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박광철 총학생회장이 불법연행되자, 명지대 학생들은 즉각적으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난사하며 진압하였고, 학생들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4월 26일 "학원 자주화 완전승리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및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경찰과 대치하던 강경대 동지는 시위자를 검거하기 위해 교내로 진입하여 골목에까지 경찰을 투입하여 무력진압을 하는 무자비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의해 집단 구타당하여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운명하였다. 동지는 아침에 학교에 오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학교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일찍 돌아오겠습니다. 경대올림" 이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겨두고 산화하였다.
  • [프로필]
    1971년 2월 서울 출생 1990년 2월 서울 휘문고등학교 졸업 1991년 3월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 민중노래패 "땅과 사람들"가입 3월 22일 총학생회 진군식 시위 도중 학내진입한 전경의 직격 최루탄에 의해 안면 부상 4월 26일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 및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 난타로 인해 심장막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 5월 14일 장례식이 경찰에 의해 저지됨 5월 20일 장례를 치룬 후 망월동에 잠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고재욱 사진
  • 이름: 고재욱
  • 당시 나이: 21
  • 고재욱 동지는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으로 역임시 학교측의 기만적인 태도에 혈서를 쓴 후 상처가 깊어 병원에서 치료 중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9명의 동지들과 함께 구속되었다. 이후 출소한 고재욱 동지는 복적 투쟁을 선봉에서 싸우다가 수련회 도중 물속에 뛰어 들다가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70년 7월 1일 서울 출생 1989년 2월 경문고등학교 졸업 1990년 총학생회 사회부장 역임, 학내 민주화 투쟁 주도 혐의로 제적 1989년 3월 신구전문대학교 입학 1991년 영등포 구치소에서 출소 1991년 8월 3일 수련회 도중 가평에서 심장마비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곽현정 사진
  • 이름: 곽현정
  • 당시 나이: 22
  • 곽현정 동지는 건대항쟁에 참여하여 구속된 후, 115일만에 출소(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 하였다. 구속 중 갖은 폭행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려 1987년 봄학기와 가을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휴학하였다. 건대 항쟁 이전과 이후에도 수차례 경찰에 연행되어 구류를 사는 등 투쟁의 선봉에 서있던 곽현정 동지는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자결했다. <오후 5시 드디어 출소식이다. "소내에 계신 애국시민 여러분! 그리고 민주학우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한신대 2학년 만 일백열 닷새만에 출소합니다. 이거 놔요, 인사도 못해요? 진정한 조국의 해방과 이땅 남과 북이 하나되어 어우러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동지가 출소 후 한신대 교지에 투고한 글의 일부분이다.
  • [프로필]
    1966년 10월 24일 전남 목포 출생 1982년 수유여자중학교 졸업 1985년 2월 11일 풍문여자고등학교 졸업 1985년 한신대학교 신학과 입학 1986년 11월 30일 건국대학교 '애학투련 항쟁' 참여 1988년 4월 10일 성지교회 2층 자택에서 운명
권희정 사진
  • 이름: 권희정
  • 당시 나이: 23
  • 성신여대 총학생회는 1996년 '예결산안 공개', '등록금 소위원회 재개' 등을 요구하며, 학원자주화투쟁을 시작하였다. 이에 학교측이 학생들의 요구는 외면한 채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자 그 당시 총학생회 정책국장이었던 권희정 동지는 총학생회 총학생회장과 함께 학원자주화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각오로 학교측이 즉각 협상에 나올 것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하였다. 10일 동안 진행된 단식 과정에서 동지는 급격히 건강이 안좋아진 상태에서 감기까지 걸려 가슴이 답답하다는 등의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급기야 4월 7일 새벽 1시경 고대안암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밤 11시 30분경 갑작스런 심근염으로 운명하였다. 단식으로 급격히 몸이 안좋아진 상태에서 감기바이러스가 심근염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후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총장으로부터 권희정 동지의 죽음에 대한 공개사과를 받아냈으며, 학생들의 요구는 대부분 관철되었다.
  • [프로필]
    1973년 5월 서울 출생 1992년 2월 고척고등학교 졸업 1992년 3월 성신여자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 입학 제14대 대선 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1993년 불교학생회 회장, 시사토론 소모임 "물결" 결성 1995년 사범대 학술부장 활동 1996년 2월 총학생회 정책국장 활동 1996년 4월 7일 "합리적 등록금 책정을 위한 재단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 및 총장실 검거 농성 중 과로와 단식 후유증으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기혁 사진
  • 이름: 기혁
  • 당시 나이: 20
  • 어린 나이에 부친이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복역을 하는 일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자라서 전남대 의대에 입학하였던 동지는 부친이 복역 중이므로 다른 학생들이 운동을 하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하는 주위의 사람들이 말렸으나, 그런 것이 운동을 기피할 이유가 되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입학 후 탈반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당시 전남대 의대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단 한 과목이라도 낙제 점수가 나오면 재시험의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낙제시키는 부당유급제 반대 투쟁의 과정 중 85년 1월초 행방불명되었다가 1월 15일 무등산 바람재에서 얼음덩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 [프로필]
    1965년 2월 7일 전남 광산 출생 1971년 아버지 기세문씨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수감(15년 복무) 충장 중학교졸업 1984년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의과대 입학 이념써클 '탈'가입 8·15반일반제 시위 전두환 방일반대 투쟁, 학원민주화투쟁참여 1985년 1월 반군사독재 민주화운동과정에 발생한 비교육적 부당유급계 반대투쟁 중 행방불명 1월 16일 무등산 중봉에서 동사체로 발견 1990년 2월 26일 명예졸업장 수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귀정 사진
  • 이름: 김귀정
  • 당시 나이: 25
  • 김귀정 동지는 노점상으로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는 가족의 현실 속에서 악착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학 입학 후 [심산연구회] 활동을 통해 조국과 민중을 고민하는 책임있는 운동가로 삶을 실천하던 중 아버님을 여의게 됐다. 그렇지만 "운동은 이름만 변하면 그 삶까지 단숨에 변하는 논리가 아니라 끝까지 변하지 않는 신념"이라며 후배 및 동료들의 생활에 건강함을 불어넣었다. 항상 동지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미제와 파쇼에 대한 적개심이 부족한 점을 경계하면서 투쟁하던 중 1991년 5월 25일 제 4차 국민대회에서 경찰의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에 포위되어 질식할 듯한 최루탄과 백골단의 폭력에 의해 운명하였다. 그러나 강제 부검 결과 사인을 밝히지 못한 채 6월 12일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 [프로필]
    1966년 서울 출생 1985년 무학여자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에 입학하였으나 집안사정으로 중퇴 1988년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입학 심산연구회 가입 활동 1989년 심산연구회 회장 역임 동아리 연합회 총무부장 역임 1991년 5월 25일 제4차 국민대회에 참가하였다가 대한극장 부근에서 경찰의 폭력적 강제진압에 의해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기훈 사진
  • 이름: 김기훈
  • 당시 나이: 23
  • 김기훈 동지는 87년 청주사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하여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청주사대 수호투쟁에 앞장서 싸우다 유기정학을 받은 이후 학교와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갔다. 꾸미지 않은 소탈한 모습의 동지는 성실하면서도 소박한 생활로 과내에서 많은 동료 및 선후배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88년 통일선봉대에 참가하면서 투쟁의 의지를 다져나갔다. 1989년, 제20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집회들을 선두에서 이끌며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학자투 기간에 7일간의 노천단식 중 몸에 이상을 느꼈으나, 단식을 끝낸 후 병원에 입원하여 진단을 받는 투철한 책임의식을 보여 주었다. 또한 농활위원장으로 일할 때 동지의 병이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쓰러질 때까지 약을 먹어가며 농활을 지도했다. 동지는 89년 2학기 투병생활에 들어가 89년 9월 15일 동료들의 비통함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 [프로필]
    1967년 4월 5일 대구출생 1986년 대일 고등학교 졸업 청주사범대학교 역사교육과 입학 1988년 흥사단 아카데미 회장 제4대 동아리연합회 학술부 차장 8·15 남북학생회담 통일선봉대 출정 1989년 제 20대 혁신총학생회 사회부장 농촌활동 준비위원장 1989년 8월 병 악화로 휴학 1990년 9월 15일 운명
김두황 사진
  • 이름: 김두황
  • 당시 나이: 23
  • 김두황 동지는 대학 3학년 말, 82년도 학내활동을 반성, 평가하고 83년도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문과대, 정경대, 사범대, 경영대 등의 당시 뜻을 같이 하던 동지들과 모임을 갖고 83년도 축제 및 학도호국단 선거, 4.19행사 등에 관해 토론하고 그 방향성과 대안 등을 계획하던 중, 83년 3월 8일 성북경찰서에 연행되었고, 이로 인해 보충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세달여후인 6월 18일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군 측은 근무 중 동료에게 "소변보러 간다고 한후 나가서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운명하기 전 집에 보낸 편지에서 "시계를 보내달라"라고 했던 것과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보이는 신념을 볼 때 자살동기가 전혀 없었다.
  • [프로필]
    1960년 6월 23일 서울 출생 1980년 고려대학교 정경계열에 입학 1982년 3월말까지 학회활동을 주도 1983년 경제학회 학회장 1983년 3월 18일 학생운동 관련 성북서에 연행되어 그날 강제징집됨 6월 18일 보안사의 '녹화사업'도중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함
김상진 사진
  • 이름: 김상진
  • 당시 나이: 26
  • 75년 4월 학원자율화 문제와 동아일보의 언론자유 문제로 인해 학생총회와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서울대 농과대 학생 3백여명의 시위대열이 가두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학생회장 황연수군과 축산과 4년 김명섭군이 연행되었는데 이에 분노한 축산과 학생들은 연행학생 석방을 위해 총장에게 공개장을 발송하고 이것이 거부되면 4월 10일자로 단식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학교당국은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았고, 이에 3백여명의 학생들은 단식은 연기하기로 했으나 해산하지 않고 자유성토대회를 시작했다. 자유성토대회 3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 동지는 '양심선언문'을 읽어나갔고, 그 과저에서 20cm가량의 과도를 품안에서 끄집어내어 할복을 하였다. 동지를 택시에 태우기까지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동지의 요청에 따라 애국가를 불러주었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구급차 속에서 운명했다.
  • [프로필]
    1949년 11월 25일 서울 출생 1968년 보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과 입학 1970년 군입대 1973년 군제대 1974년 2학기 복학 1975년 4월 11일 서울농대 교정에서 열린 자유성토대회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할복 자결, 서울 의대 이송 도중 운명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김성수 사진
  • 이름: 김성수
  • 당시 나이: 18
  • 시위 중 두번 연행되어 훈방된 일이 있었던 김성수 동지는 1학기 시험준비를 하던 중 86년 6월 18일 자취방으로 걸려온 전라도 말씨를 쓰는 정체불명의 사람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 되었고, 그후 3일 후인 6월 21일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부산 송도 앞바다 방파제 앞 수심 17m 지점에서 스쿠버다이버 최영봉 씨에 의해 바위틈에 세개의 시멘트 덩어리를 달고 눕혀져 있던 채로 발견된 동지는, 22일 경찰에 의해 인양되었다. 경찰은 성적 불량에 의한 비관자살로 처리해 버렸으나, 1학년 학기도 끝내지 않은 동지가 성적을 비관할 리 없으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이유가 없고, 두부에 정교하게 가격당한 상처가 있는 점, 안기부가 사건의 전반에 개입하고 있는 점 등, 동지의 죽음의 진상은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 [프로필]
    1968년 4월 15일 출생 1986년 2월 강릉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입학 총학생회 연극부에 가입하여 활동 1986년 6월 18일 행방불명 1986년 6월 21일 부산송도 앞바다에서 시멘트덩이를 매단 채 죽어있는 것이 잠수부에 의해 발견됨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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