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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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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일 사진
  • 이름: 홍기일
  • 당시 나이: 25
  •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시 시민군으로 참여하여 총상을 입기도 했고, 그후 건축노동자로 일하면서 살아남은 부끄러움을 승화시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여 살아왔던 동지는 광복 40주년을 맞이하던 1985년 8월 15일,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장소인 도청 앞에서 동지는 몸에 불을 붙인 후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 그토록 울부짖으며 부르짖던 민주가 자유가 뜨거움의 이름으로 5년이 흐른 이 시점에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 현실에 무등을 보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침묵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착취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광주 시민이여 침묵에서 깨어나라 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 뭉칩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다. 동지는 임종을 지켜보는 부친에게 "절대 비굴해지지 마세요, 경찰과 타협해서는 안되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산화하였다.
  • [프로필]
    1960년 전남 화순 출생 전남 중학교 중퇴 1984년 2월 사우디에서 미장공으로 취업 1985년 2월 귀국하여 건설사업장 전전하며 생활 1985년 8월 15일 오후1시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 여!'라는 전단을 뿌리고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분신,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홍장길 사진
  • 이름: 홍장길
  • 당시 나이: 58
  • 홍장길 동지는 밀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 박정희 정권의 인력 수출정책인 파월장병으로 월남전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것만으로는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택시 노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택시 사업주들은 이윤창출을 위해 현대판 노예제도를 도입하여 무사고 10년에 개인택시 영업권이라는 제도의 올가미를 씌워 족쇄를 채웠고 국민캡 사장 허준도는 그것도 모자라 회사를 분할매각하고 기사를 택시의 부품처럼 끼워팔아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하지만 홍장길 동지는 분할매각 완전철회를 외치며 24년 8개월이라는 한많은 국민캡 노동자생활과 60년 인생을 택시 자본가에게 죽음으로서 저항한 것이다.
  • [프로필]
    1939년 7월 8일 경남 밀양군 출생 밀양수산 동명중학교 졸업 1973년 연희교통 (현재 국민캡) 입사 1992년 노동조합 상임위원 재임 1994년 노동조합 고문으로 선임 활동 1997년 5월 31일 국민캡 휴게실에서 음독자결. 운명
황보영국 사진
  • 이름: 황보영국
  • 당시 나이: 26
  • 황보영국 동지는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 삼화고무, 태화고무, 우성사 등에서 연강판전기용접, 중장비 운전 등의 기술을 익히면서 생활하던 성실한 노동자였다. 1987년 5월 17일, 광주항쟁 7주기를 맞이하여 거사를 결심한 동지는 부산상고 앞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후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를 외치며 100m를 달리다 쓰러졌다. 동지는 쓰러지면서도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절규하며 혼절, 그후 경찰에 의해 백병원으로 옮겨져 치료하다 일주일만에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1년 9월 16일 부산 출생 1979년 성지공고 중퇴,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 삼화고무, 태화고무 근무 1987년 3월 3일 박종철 49재에 참석했다가 연행되어 1주일간 구류받음 1987년 5월 17일 부산상고 앞에서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 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 헌법 쟁취하자"를 외치며 분신 5월 25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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