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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사진
  • 이름: 김세진
  • 당시 나이: 21
  • 1986년 4월 28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4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400여명의 서울대 2학년 학생들이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반전반핵 투쟁위원장 이재호,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 동지는 전방입소 거부투쟁을 지도하던 중 예식장 옆 3층건물 옥상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며 강제진압하려는 폭력경찰에 경고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폭력경찰의 강제진압 도중, 두 동지는 분신으로써 항거하였다. 이재호 동지는 전신 80%이상의 3도 화상을 입었으며, 김세진 동지는 전신 60%의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투쟁을 계기로 반미구국투쟁은 급속히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한국의 운동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프로필]
    1965년 2월 2일 충북 충주 출생 1983년 2월 28일 경복고등학교 졸업 1983년 3월 1일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자연 4계열 입학 1984년 3월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미생물학과 진입 1984년 7월 감리교 자교교회 청년회장 1985년 3월 자연대학생회 부학생회장 및 미생물학과 학회장 1986년 3월 자연대학생회 학생회장 서울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장단 대표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1986년 5월 3일 운명 광주군 노포면 판교공원 묘지에 안장
김수경 사진
  • 이름: 김수경
  • 당시 나이: 18
  • 김수경 동지는 대구 경화여고 3년에 재학하면서 학생회 총무부장을 역임하면서 활동하던 중 1990년 6월 5일 밤 11시 25분께 경북 영남대 인문관 4층 옥상에서 투신, 운명하였다.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 반대 시위를 10여 차례 주도, 학교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던 동지는 "전교조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찍힌 학생은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의 유서와 자신의 죽음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쪽지를 남겼다.
  • [프로필]
    1972년 출생 1988년 대구 경화여자고등학교 입학 1990년 6월 5일 밤 10시 25분경 영남대학교 인문관 옥상에서 투신 1990년 6월 11일 운명
김영균 사진
  • 이름: 김영균
  • 당시 나이: 21
  • 1991년 5월 1일 살인정권 노태우에 항거하여 4월 29일 전남대 박승희 양이 분신 후 투병 중인 상황에서 언제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모든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며 실천하던 김영균 동지는 철저하고 겸허한 운동자세로 90년 범민족대회에서 통일 선봉대원 활동 및 9월 7일 농민대회에서 문화선전대 활동을 하였고, 가식에 둘러싸인 지식인이 아닌 민주화에 대한 목마름을 사랑으로 실천했다. 동지는 91년 5월 1일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살인 폭력 규탄대회' 도중 "노태우정권 타도,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분신, 경북대 병원에서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절하게 투쟁하다 5월 2일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71년 서울 출생 1990년 2월 서울 대원고등학교 졸업 1990년 3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입학 '민속문화 연구회' 결성 회장 역임 교지'솔뫼' 편집위원 등의 활동을 함 1991년 5월 1일 '故 강경대 열사 추모 및 살인 폭력 규탄대회'도중 "노태우정권 타도,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분신 5월 2일 경북대학교 병원에서 운명 안동대 교내 가묘
김용갑 사진
  • 이름: 김용갑
  • 당시 나이: 24
  • 김용갑 동지는 동우전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자주학원건설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학교 당국의 위협을 받던 중, 90년 3월 28일 새벽 2시경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김 진이라는 학생과 직원은 "사람을 차로 받아 죽여도 과실치사로 6개월 밖에 살지 않는다"라고 공공연히 얘기했고, 3월 8일에, 설악 유스호스텔에 감금되어 집단폭행 당하기도 하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동지는 품에 칼을 품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경찰에 자수한 범인 문종석이라는 사람은 재단측이 노름빚을 갚아주겠다고 해서 자수를 한 사람이었고, 당시의 사건 현장에는 핏자욱과 브레이크 자국이 전혀 없으며, 우측 신발은 시신의 후방 32m 지점의 숲속에서 좌측 신발은 전방 30m 지점에서 발견된 점, 그리고 시신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옮겨진 듯 가지런히 누워져 있었던 점 등은 교통사고로 위장하기 위한 흔적이 역력했다.
  • [프로필]
    1989년 속초 동우전문대학교 입학 1990년 동우전문대학교 총학생회장 당선 학원자주화 투쟁 전개 1990년 3월 28일 운명
김용권 사진
  • 이름: 김용권
  • 당시 나이: 23
  • 1983년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용권 동지는 1985년 10월 카투사병으로 입대 후 의정부 소재 미 제 2공병사단에서 근무를 하던 중 86년 8월 3일 14시경 미 8사단 보안부대로 호출되어 동일 18시 30분경까지 추봉엽 상사로부터 서울대 민민투 관련 제보를 할 것 등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고 7시간 동안 발가벗기운 채 매를 맞은 경우도 있는 등으로 해서 불면증과 신경쇠약, 정신불안에 시달려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87년 2월 18일 용산 미 121 후송병원에 들러 약을 받고 영등포 집에 들른 뒤 2월 20일 오후 10시 40분경 자신의 내무반 2층 침대난간에 기도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은 채 목을 매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미 군당국은 자살로 수사 종결하였으나, 목을 매어 죽은 사람이 무릎을 꿇은 상태일 수 없으며, 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프락치 강요를 받아오던 중이란 점으로 보아 보안대에 의한 살해로 추정된다.
  • [프로필]
    1964년 6월 10일 출생 1983년 서울대학교 경영과 입학 1985년 카튜사 지원 입대 1987년 2월 20일 내무반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용미리 서울 시립묘지에 안장
김의기 사진
  • 이름: 김의기
  • 당시 나이: 21
  • 1980년 광주에서 우리나라 군대에 의해 우리 민족이 처참하게 살육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김의기 동지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았던 광주의 참상을 직접 선봉에 서서 서울 시민에게 알리기를 결심하였다. 5월 30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정기 금요기도회를 시위 날로 잡았으나 대중적으로 결행되지 못하고 혼자서 추진하던 중 6층의 폭 1m베란다를 건너서 창문 밖으로 떨어져 운명, 계엄군에 의해 시신이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투신 당시의 상황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포들에게 드리는 글"의 내용을 본다면 시위를 계획할 때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프로필]
    1959년 4월 20일 경북 영주군 영암리 출생 1976년 3월 서강대학교 경상대 무역학과 입학 KUSA가입 1978년 12월 농촌활동 지도 1979년 8월 서강대학교 근대사 모임 주도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목격 1980년 5월 30일 기독교 회관 6층에서 떨어져 운명 파주 금촌 공원에 안장
김준배 사진
  • 이름: 김준배
  • 당시 나이: 27
  • 광주대 재학시절인 93년부터 수배를 받아오던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동지는 97년 경찰의 과잉검거 작전으로 인해 97년 9월 15일 밤 아파트에서 추락해 운명했다. 경찰은 동지가 학교 후배 집인 광주시 청암아파트 1308호에 은신해 있던 도중, 15일 밤 11시 50분경 동지를 연행하기 위해 전남도경찰청 보안수사대와 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 24여명이 들이닥치자 13층 높이에서 케이블선을 타고 탈출하다 추락하여 다음날 새벽에 운명한 것으로 발표했다. 이에 검찰은 사건의 조기종결 방침에 따라 16일 오전 10시경 경황이 없을 부모님에게서 부검 합의서를 받아내고 바로 부검을 실시했다. 동지의 죽음은 96년 이후 계속되어온 한총련 와해, 말살 책동으로 대변되는 공안탄압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합법적인 절차과정을 무시한 경찰의 폭력적인 과잉검거작전의 결과였다.
  • [프로필]
    1970년 전남 장흥 출생 19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 입학 1992년 광주대학교 투쟁국장 1993년 남총련 투쟁국원 1994년 광주총협 투쟁국장 1995년 남총련 투쟁국장 1997년 한총련 투쟁국장 1997년 9월15일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철수 사진
  • 이름: 김철수
  • 당시 나이: 18
  • 1991년, 5월 항쟁 11주년 기념일이자 강경대 열사의 장례 행렬이 망월동으로 향할 때 보성고 학생회 주최로 열린 5·18 기념행사를 치루던 도중 김철수 동지는 운동장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 채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행사장으로 달려가면서 친구들에게 "잘못된 교육을 계속 받을래?"라고 외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우리의 소원'을 친구들에게 불러 달라고 했다. 동지는 유서로 보이는 타고 남은 종이에 노태우 정권의 퇴진과 참교육 실천을 위해 기성세대의 깨달음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동지는 결국 분신 2주만인 6월 1일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73년 3월 전남 보성 출생 1989년 3월 보성고등학교 입학 1991년 5월 18일 보성고 운동장에서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1991년 6월 1일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묘역에 안장
김태훈 사진
  • 이름: 김태훈
  • 당시 나이: 22
  •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김태훈 동지는 서울대에 입학한 후 EHSA라는 써클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고향 광주에서 대학살 만행이 자행되고 이에 대한 학내 시위가 잦아지자 평소 말이 없던 동지는 더욱 말수가 적어졌다. 동지가 투신하던 그날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도서관에서 원서를 번역하고 있던 동지는 창너머로 침묵시위를 벌이는 학우들이 무수한 경찰과 사복형사들에게 구타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도서관과 아크로폴리스 주변에서 산발적으로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던 그 때 동지는 도서관 6층에서 "전두환 물러가라" 라고 구호를 외치고 자신의 몸을 던졌다. 학원이 온통 중무장한 사복경찰로 채워지고 폭력과 체포, 위협의 눈초리에 숨조차 막히던 그 때, 분노, 두려움, 부끄러움이 뒤섞인 채 싸움이 사그러져 갈 때, 동지는 핸드마이크도, 유인물도 가지지 않은 빈 몸으로 몸을 던져 우리를 일깨운 것이다.
  • [프로필]
    1959년 4월 13일 광주 출생 1977년 광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입학 197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진입 1981년 5월 27일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 도서관에서 투신, 운명 경기 광주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
남태현 사진
  • 이름: 남태현
  • 당시 나이: 22
  • 남현태 동지는 조국이 제국주의자들과 독재의 무리에게 빼앗긴 이래로 학원이 식민지 노예를 길러내는 곳으로 기능해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상과 학문연구에 대한 자유는 철저히 말살되어 왔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권리, 우리가 낸 등록금을 우리가 편성할 권리를 갖기 위한 의로운 투쟁도 학교 당국과 어용교수들의 탄압으로 좌절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1989년 4월 7일, "기성회비 사용내용 공개, 예·결산시 학생대표 참여" 문제로 학원민주화 투쟁을 전개하던 당시 서울교대에서 삭발·단식·수업거부 투쟁 등이 부분적 승리로 그치고 정리되려 하자, 동지는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는 혈서로 쓴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동지는 미제와 군부독재, 이들에 기생하여 살고 있는 식민지 노예교육의 첨병인 학교당국과 어용, 무능교수들의 가슴에 비수로써 꽂혔던 것이다.
  • [프로필]
    1967년 8월 30일 충남 아산 출생 1986년 천안 북일고등학교 졸업 서울교육대학교 입학 1988년 3월 윤리과 학생회 학술부장 역임 1988년 10월 동아리 연합회 총무부장 역임 1989년 4월 7일 분신 1989년 4월 8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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