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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 민주공원 > 민주열사 > 재야운동가
김순복 사진
  • 이름: 김순복
  • 당시 나이: 29
  • 김순복,손구용 두 동지는 1994년 2월 1일 "UR재협상, 국회비준 거부, 농업대개혁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 참석을 위하여 진양군 농민회 사무실에서 아침 6시 25분경 서울로 출발하여 전농의 지침에 따라 도방송차량을 가지고 올라가야 했다. 이 방송차량을 손구용, 김순복 동지가 맡기로 하고, 진양군 농민회 본대 버스 뒤를 따라 손구용 동지가 운전하는 1톤 트럭이 진주→김천 방면으로 동시에 출발하였다. 신청군의 도로는 전날 내린 비와 눈으로 얼어 빙판길이었다. 두 동지가 탄 차량이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내백리 남효부락앞 S자형 커브지점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반대편 언덕쪽으로 추락지점에서 느티나무(지름 약 30㎝)와 충돌하여 김순복 동지는 두개골 파열로 즉사하였으며 손구용 동지는 두개골 파열로 경상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다 저녁 8시 50분경에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5년 경남 통영출생 1984년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입학 1991년 경상대학교 총학생회 연대사업국장 1993년 전국농민회 총연맹 경남도연맹 간사 1994년 2월 1일 손구용 동지와 함께 서울 농민대회 참석 도중 도로에서 참사를 당하여 두 개골 파열로 그 자리에서 운명
김영자 사진
  • 이름: 김영자
  • 당시 나이: 50
  • 1966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정읍농고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이어진 동지의 삶은 자주적인 여성농민운동 조직의 건설과 지역운동의 대모로서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25년간 "고난의 가시밭길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1977년 동지가 산파역할을 한 한국가톨릭 농촌여성회는 해방 이후 최초의 전국적인 여성농민 단일조직으로서 이후 89년 전국여성농민위원회를 거쳐 현재는 전국 60개 군에 조직을 갖춘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슬하에 4남매를 둔 어머니이면서도 아내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겼던 동지는 여성농민의 권리회복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삶을 살아갔으며, 결국 위암선고를 받고 투병 중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44년 3월 2일 충남 출생 1963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가정학과 입학 1966년 대학 졸업, 정읍농림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재직 1969년 3월 상계동에서 비닐하우스 시설원예 농사 시작 1975년 지역탁아소인 '원터 어린이집' 운영 1977년-78년 '가톨릭농촌여성회' 초대회장 역임 1986년 성남민주화운동연합 여성분과 위원장 1989년 경기도 여성농민위원회 총무 역임 1990년 '큰우리 소비자 협동조합' 이사장 활동 1993년 3월 위암진단을 받고 투병 1993년 9월 11일 오전 9시 30분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영환 사진
  • 이름: 김영환
  • 당시 나이: 26
  • 김영환 동지는 명지대생 강경대 동지가 운명한 그 다음날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김영환 동지는 4월 25일까지 자취방에 있는 모습을 집주인이 보는 등 생존한 모습이 보였으나, 그후 행적이 눈에 띄지 않았다. 동지는 한겨레사회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민족문제, 군축문제, 통일문제 등에 대한 정력적인 연구와 논문발표 등의 활동을 벌였고, 죽음 직전 윤석양 후원사업회 관계자들을 만나 군 내부의 인권문제에 관한 자료를 전달 받았으며 그후 기무사 요원이 동지의 행적을 감시한 것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동지의 사인에 대해서 밝히지를 못하고 가족과 동료들에 의해 장례가 치루어졌다.
  • [프로필]
    1965년 2월 15일 강원도 삼척 출생 1984년 2월 삼척고등학교 졸업 1984년 3월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입학 1989년 한겨레사회연구소연구원 (한미군사관계, 평화, 군축문제, 남북관 계, 통일문제 등을 연구) 1991년 4월 7일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문영수 사진
  • 이름: 문영수
  • 당시 나이: 29
  • 문영수 동지는 1982년 8월 19일 저녁 9시경 광주시 중흥동 소재 덕천여인숙에서 김광호와 함께 술을 마시다 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동지를 검거하여 역전파출소로 연행했다. 김광호는 피를 흘리며 효성병원으로 후송되고 문영수는 서부경찰서 형사계로 인계되었다. 증언에 의하면 문영수는 연행될 당시 아무런 부상도 없었고 건강상태도 매우 좋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연행 다음날 1982년 8월 20일 오전 9시경 순찰중 중흥동 노상에서 신음중인 환자를 발견하여 광주시 유동 소재 조세현 외과에서 응급조치를 시킨 후 광주 적십자병원에 행려환자로 허위 입원시켰으나 1982년 8월 22일 오후 6시경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동지의 사체는 본적, 주소 일체불상인 행려병 환자로 취급되어 1982년 8월 23일 전남의대 해부학 교실로 넘겨지고 몇개월간 보관되다 실습용으로 사용되었다.
  • [프로필]
    1953년 11월 10일 출생 청량리 초등학교 졸업 진아교통 버스기사로 일함 1982년 8월 19일 경찰에 연행되어 구타와 폭행을 당함 1982년 8월 22일 광주적십자 병원에서 운명 행려병환자로 위장된 채 해부학실습용으로 사용됨
문익환 사진
  • 이름: 문익환
  • 당시 나이: 76
  • 문익환 목사는 한마디로 암울했던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줄곧 재야 민주운동을 주도해 온 정신적 지주였다. 1976년 3월 1일 '3·1 민주구국선언사건'을 주도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20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첫 번째 옥고를 치르게 된 이후 삶의 절반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내었다. 그 과정에서 85년 3월 민주통일국민회의, 민중민주운동 협의회 등 당시 재야단체를 통합한 민통련 발족을 주도하고 초대 의장으로 활약했으며 89년초 전민련의 출범 후에는 전민련 고문을 맡는 등 재야운동의 대부로서 큰 업적을 남겼다. '통일은 됐어'라고 힘주어 외치시던 목사님은 유신의 압제에 분연히 맞서고 이후 치열한 반독재 투쟁과 통일운동으로 일관해 오신 민족의 큰별이었다.
  • [프로필]
    1918년 만주 북간도 출생 1932년 중학교 재학 중 신사참배 거부로 중퇴 1976년 '3·1 민주 구국사건'으로 첫 투옥 1980년 '내란예비음모죄'로 세 번째 투옥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19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1989년 3월 방북 1991년 6월 6일 소위 '분신정국'에서 장례위원장을 맡는 등 활동, 형집행정지 취소로 재수감 1992년 1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1993년 4월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운동 제창 1993년 8월 제4차 범민족대회 대회장 1994년 1월 '새로운 통일운동체' 결성을 위해 전력하던 중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문한영 사진
  • 이름: 문한영
  • 당시 나이: 77
  • [프로필]
    1919년 원산 출생 1930년 원산부두 노동자파업에 참가 1944년 '건국동맹' 원산지부 참여 일제패망 뒤 '건국준비위원회' 참여 1960년 4·19 이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 회' 조직위원장 1980년 5·16쿠데타로 투옥 1989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 재건에 힘씀 1996년 4월 18일 운명 수유리 도봉산 묘지에 안장
민병일 사진
  • 이름: 민병일
  • 당시 나이: 39
  • 1997년 2월 2일 닭꼬치 등을 노상에서 팔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던 민병일 동지는 경기 용인시 노재 신갈 파출소에 민원을 제기하러 갔다가 파출소의 경찰관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두 개골이 8cm가량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곤봉에 맞아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민병일 동지는 심각한 외출혈로 인해 자꾸 부어오르는 뇌의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 두 개골을 열어 놓은 처참한 상태로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게 하여 생명을 유지하던 중 끝내 운명하였다. 경찰측에서는 의경이 민병일 동지를 밀어서 다쳤다고 발표하였으나 정황이나 의사판단으로 보아서는 곤봉에 맞아 머리가 8cm함몰된 것으로 보여진다.
  • [프로필]
    1958년 12월 2일 경기도 파주 출생 1989년-1994년 삼성재단 산하 중앙개발연구원에서 근무 (노동조합 발기인으로 활동) 1995년 9월 28일 구갈 철거민 대책위원회 입회 1996년 4월 6일 구갈 철거민 대책위원회 조직부장 1997년 2월 15일 노점단속으로 빼앗긴 생계수단을 찾기 위해 파출소에 방문했다가 경찰관들의 집단폭행으로 두개골이 으깨진 채 뇌사상태에 빠져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다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박상구 사진
  • 이름: 박상구
  • 당시 나이: 20
  • 1986년 하사관에 입대한 동지는 87년 5월 11일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군에서는 평소 동지가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많이 못했다'며 비관을 했다고 하며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했으나, 시체에는 오른쪽 귀부분과 얼굴, 몸은 깨끗한 데 왼쪽 귀부위와 목, 어깨부분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 [프로필]
    1967년 7월 6일 경남 울산 출생 1986년 대구 공업고등학교 졸업 하사관 입대 1987년 5월 11일 운명
박성은 사진
  • 이름: 박성은
  • 당시 나이: 21
  • 고교시절부터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며 의식을 키워왔고, 방위근무 중이었던 동지는 90년 5월 사망 직전에 쓴 일기에는 "오월의 혁명정신을 계승하자!"라고 적기도 했다. 제31사단 사단직할 11병참선 경비대대에 배치된 동지는 부대내에서 발생한 구타사건과 군부대 내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문건을 작성한 후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주일 가량 부대 내에서 모종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동지는 이 조사를 받고나서 외출하였으나 행방이 파악되지 않았다가 5월 24일 새벽 5시 40분경 거주지인 광주 중앙교회내 유치원 놀이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건 이후 5월 15일 작성한 문건이 모두 분실되었고, 부대에서 일주일 이상을 억류하였음에도 그에 대한 해명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단순한 자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프로필]
    1969년 12월 광주 출생 1985년 2월 광주 동성중학교 졸업 1989년 2월 광주 농업고등학교 졸업 1990년 4월 9일 방위병으로 입대 1990년 5월24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박순덕 사진
  • 이름: 박순덕
  • 당시 나이: 34
  • 97년 7월 재개발지역인 동대문구 전농3동 철거민들은 '대책없는 강제철거 반대와 가수용 입주'를 요구하며 철제망루에서 한달째 농성을 벌였다. 그러던 7월 25일, 오전 9시 30분경부터 재벌회사인 선경건설과 재개발조합은 용역회사인 적준토건 소속 철거깡패 300여명을 동원하여 전투경찰 600여명이 출동한 가운데 강제철거를 시작하였다. 철거깡패들은 철탑망루 주위에 옷가지와 페타이어를 태워 유독성 연기를 뿜어내 두더지잡기라도 하듯 농성 중인 철거민들의 질식을 기도하였다. 그러면서 철거깡패들은 철탑망루에 다가가서 철거민들이 1층에 설치해 놓은 방벽을 뜯어내고 옷가지와 페타이어들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후 6시 30분이 되자 철제망루 밑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불기둥이 치솟아 순식간에 철탑망루를 뒤덮었다. 이 과정에서 박순덕 동지는 18M 높이에서 뛰어내려 운명한 것이다.
  • [프로필]
    1963년 2월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6월 김창수와 결혼, 슬하에 남매 1995년 2월 전농3동 철거민 대책위 가입 1997년 7월 25일 철거반대 철탑망루 농성 중 철거깡패들이 폐타이어 등으로 방화를 하고 화염병을 투척하자 질식사를 피하기 위해 저항하던 중 불길에 휩싸여 투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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