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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기 사진
  • 이름: 이원기
  • 당시 나이: 23
  • 이원기 동지는 성남 은행 2동 13통에서 사글세방을 전전하다 가족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강제로 쫓겨나다시피 하여 오갈데 없는 막연한 상황에서 1987년 3월경 결국 시유지에서 군용 텐트를 치고 전기도 없이 거주하는 중에 성남 시청 철거반들의 악랄한 철거만행이 시작되어 철거반들의 온갖 협박과 철거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항거하였다. 은행 2동을 중심으로 빈민협의회를 구성, 김광수 목사님을 구심점으로 하여 1989년 하대원 철거반대투쟁에 연대 참여하였다. 수차례 철거 위협을 받고 "이 지역이 철거를 당한다면 차라리 내 한목숨 버리겠다. 시장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말을 하면서 괴로워하던 이원기 동지는 이웃 주민 앞으로 남긴 유서에 처와 자식을 부탁한다는 내용과 13통 통장 앞으로는 어려운 주민들인 만큼 철거를 막아달라는 내용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 [프로필]
    1987년 성남 은행동 빈민협의회 결성 1989년 성남 하대원동 철거반대 투쟁참여 1990년 5월 17일 당국의 무책임한 철거를 막아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메어 자결
이재식 사진
  • 이름: 이재식
  • 당시 나이: 37
  • 이재식 동지는 고향에서 삶터를 찾아 거제로 들어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성실하게 살아갔다. 신문사 지국에서 일하면서 한편으로 부인과 힘을 합쳐 호떡을 팔아 가난한 살림에 보태 보려고 나선 이재식 동지의 노점활동을 사무소는 대책도 없이 단속, 철거만 했다. 1989년 10월 16일 신현읍 개발과장을 반장으로 한 노점단속반이 거제군 농촌지도소 앞 호떡 손수레를 끌고 갔다. 부인이 이에 항의하던 중 밀가루 반죽을 오토바이에 싣고 온 남편 이재식 동지가 통사정을 해도 듣지 않고 읍장은 뒤늦게야 나타나 콧방귀만 뀌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12시 40분경 울분을 못 참은 동지는 그만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불을 당겼다. 이를 본 직원들이 멍하니 보는 사이에 3도에 이르는 치명적인 화상을 입고 거제 기독병원, 마산 고려병원, 부산대병원 등을 찾아갔으나 모두 진료를 포기하여 영도의 해동병원에서 생사를 헤매다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52년 5월 충북 중원군 출생 1985년 '성흥사'에 입사, '노동조합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여 부위원장 역임 1987년 9월 한국의장 취업 1988년 5월 노동조합결성추진과 조합활동에 대한 감시와 해고위협으로 노동자 생활정리, 한겨레신문 거제지국 총무, 대우조선 노동자의 파업과 농성지원 1989년 6월 노점활동 시작 1989년 10월 16일 전국적인 노점단속에 항의하여 분신 1989년 12월 11일 57일간의 투병 끝에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정순 사진
  • 이름: 이정순
  • 당시 나이: 39
  • 이정순 동지는 어려운 환경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가정살림과 동생들 학비를 뒷바라지 해주었다. 그 후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가정형편이 매우 힘들었고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1남 3녀를 뒷바라지하며 꿋꿋이 버텨나갔다. 평소에 공부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동지는 어려운 시련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했다. 평소에 노트에 많은 글과 시를 썼는데 분신 뒤 동지의 방에서 그런 노트가 3권이나 나왔다고 한다. 그 뒤 이정순 동지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고 독실한 신앙생활 속에서 예수의 희생정신에 대해 깊이 감화받았던 듯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91년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 경 강경대 동지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연세대 정문앞 철교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고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불덩어리가 되어 투신하였다.
  • [프로필]
    1952년 3월 19일 전라남도 순천 출생 1964년 2월 순천 남국민학교 졸업 1991년 5월 18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 철교위에서 분신 후 투신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이태춘 사진
  • 이름: 이태춘
  • 당시 나이: 27
  • 동지는 1987년 6월 18일 부산 좌천동 육교 시위에서 전경들이 다연발탄과 직격탄을 쏜 뒤 육교 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이날 저녁 좌천동 시위는 6월 항쟁 중 부산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었고, 발견 당시 상황은 행진 중 전면에 있던 경찰이 갑자기 다연발탄과 최류탄을 난사하였기 때문에 그곳에 밀집하여 있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윗쪽으로 피하면서 흩어졌고, 사람들이 떠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등 극도로 혼란스런 상태였다. 시위대가 지나간 뒤, 시민 4명이 동지를 지나가는 승용차에 태워서 대연동 재희병원으로 후송했고 그 당시 동지는 눈을 갸냘프게 움직였으나,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옷에 하얀 최루가루가 뿌옇게 묻어 있었다고 한다. 뇌수술을 하였으나, 1987년 6월 24일 20시40분경 운명, 부검 후 1987년 6월 27일 10시 범일성당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
  • [프로필]
    1960년 2월 7일 부산 출생 1986년 2월 동아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1986년 3월∼87년 3월 주식회사 화승 자재과 근무 1987년 3월 2일 태광고무(주) 무역부 입사 1987년 6월 18일 6월 민중항쟁의 시위 도중 부산시 좌천동 육교 밑에서 쓰러진 채 발견 1987년 6월 24일 부산시 봉생병원에서 뇌수술하였으나 운명 양산 가톨릭 공원묘지에 안장
임기윤 사진
  • 이름: 임기윤
  • 당시 나이: 58
  • 임기윤 목사는 암울한 유신치하인 1975년 2월 16일 범교단적으로 40 - 50명의 목회자가 조직한 '사회정의구현 부산 기독인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함석헌 선생, 서남동 목사, 문동환 목사 등의 초청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반유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이를 이유로 국군보안 사령부 부산분실에 참고인으로 불려간 1980년 7월 19일 이후 3일만인 21일, 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가 26일 순교하였다. 보안사 측에서는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고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평소 목사는 혈압이 높지 않았으며 부인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뒷머리 왼쪽이 3센치 가량 찢어져 있고 그 곳에 피가 흘러 말라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임기윤 목사는 보안사 내에서의 폭행, 고문 등 가혹행의로 인하여 운명하였거나 설혹 육체적 고통은 당하지 않았더라도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공포분위기에서의 정신적 고문으로 운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 [프로필]
    1922년 12월 27일 평남 용강군 오신면 석정리에서 출생 1951년 중앙신학교 신학과 졸업 1961년 중앙신학교 사회사업과 졸업 1966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목사 안수 1971년 ∼ 72년 부산기독교 연합회 총무 1971년 7월 2일 부산 기독교교회 협의회 총무 1979 - 80년 부산신학교 운영이사장 1979 - 80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앙연회 부산지방 감리사 1980년 7월 19일 국군보안사령부 부산분실에 연행됨 1980년 7월 21일 부산 통합병원으로 옮김 1980년 7월 26일 운명
장준하 사진
  • 이름: 장준하
  • 당시 나이: 57
  • 오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으로 재야 대통령이라는 칭송까지 들은 민족의 지도자였던 장준하 동지는 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구축해 갈 때 가장 선두에 서서 민주세력들을 결집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74년 1월에는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74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후 지속적인 유신헌법 철폐를 목적으로 한 개헌운동의 노선단일화를 위해 민주통일당을 탈당하였다. 그러던 중 75년 8월 17일 장준하 동지가 약사봉 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자 박정희 정권은 등산을 하다가 실족, 익사한 것으로 사건을 서둘러 종결지었다. 이는 재야 지도자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암살이라 볼 수 있다.
  • [프로필]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 출생 1932년 평양 숭실학교 입학 1940년 4월 일본 동경 일본 신학교에 입학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가다 탈출 1945년 1월 중국 중경에서 광복군에 편입, 광복군 대위에 임관됨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으로 입국 1947년 12월 조선 민족 청년단에 참가 1964년 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에 참가 1965년 조국수호협의회에 참가, 한일조약 반대투쟁에 가담 1967년 6월 옥중 출마로 동대문 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박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함 파주 천주교 나자렛 묘역에 안장
정상순 사진
  • 이름: 정상순
  • 당시 나이: 25
  • 보성고 김철수 동지의 고교 선배인 정상순 동지는 노동자로서 여러 직종에 종사하였다. 91년 계속되는 분신에 괴로워하던 중 고교 후배인 김철수 동지가 분신하여 전남대 병원에서 투병을 하자 병원을 찾아와 두 번씩 울고 갔다고 한다. 5월 22일 전남대 병원 영안실 위에서 "노동자여 투쟁하라. 시민들이여 함께 호흡하고 함께 외치고 투쟁하자"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후 투신하여 5월 29일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6년 11월 1일 전라남도 보성 출생 1985년 2월 보성고등학교 졸업 1991년 5월 22일 오후 7시 25분경 전남대 병원 영안실 위에서 "노태우 물러가라"며 투신 1991년 5월 29일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정상율 사진
  • 이름: 정상율
  • 당시 나이: 48
  • 88년 4월 결성한 돈암, 동소문동 세대위는 1년동안 수차례의 강제철거와 조합이 고용한 깡패들과의 계속되는 충돌에도 불구하고 삶의 자리를 찾기 위한 불굴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정상률 동지가 운명한 2월만 해도 2번의 강제철거를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막아내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던 1989년 2월 18일 돈암동 세입자 김성원씨 집에 가옥주 신광선씨가 술에 취한 채 당장 집을 비우라고 소란을 피우자 김성원씨의 부인이 공포에 질려 세입자 대책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였고, 달려온 동지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이야기하자"며 다가갔다. 그때 신광선은 우유각 속에 감추었던 식칼을 꺼내어 동지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급히 고대 혜화병원으로 옮겼으나 동지는 운명하고 말았다.
  • [프로필]
    1941년 7월 10일 충남 논산군 강경읍 출생 1970년 이후 양복 재단사 생활 1989년 돈암, 동소문동 세입자 대책위원회 부회장 역임 1989년 2월 18일 술에 취한 가옥주가 휘두른 칼에 찔려 운명 용미리 서울시립 묘지에 안장
정성규 사진
  • 이름: 정성규
  • 당시 나이: 23
  • 87년 공정선거 감시단으로도 활동을 하였고, 88년 청주지역 민주청년연합에서 지역운동을 하던 정성규 동지는 8월 통일문제 시민강좌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함께 매포수양관에서 수련대회중 돌연한 사고로 익사하였다. 다음은 추모제에서 후배가 평소 동지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동지를 잃는 아픔 속에서도 억센 생명력이 다시 일어서야 함을 알기에 못다한 말씀이 무엇임을 알기에 눈물을 훔치고 나서렵니다. 형! 지켜보고 계시지요. 시련의 칼바람 속에서도 청년이 조각난 강토에 굳세게 서게 되는 그날까지 형 함께 하시는 것이지요. 죽어서도 우리들 속에 살아계시는 생명을 압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 [프로필]
    1965년 출생 1983년 충북대학교 철학과 입학 1985년 인문대 학생회장 당선 1986년 학내시위 주도로 구속, 집행유예 선고 1987년 청주 민청 총무 1988년 청주 민청 조직부장 1988년 8월 14일 수련회 도중 익사
정연관 사진
  • 이름: 정연관
  • 당시 나이: 21
  • [프로필]
    1966년 12월 강원도 삼척군 출생 1973년 3월 철암 국민학교 입학 1978년 2월 대구 남산국민학교 졸업 1981년 2월 대구 경구중학교 졸업 1984년 2월 포항 대동고등학교 졸업 1986년 5월 군입대 1987년 12월 4일 운명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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