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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사진
  • 이름: 조영래
  • 당시 나이: 43
  • 동지는 서울대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 삼성재벌 밀수 규탄, 6. 7부정선거 규탄, 삼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공명선거쟁취 등의 학생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후 6년 가까이 피신생활을 하던 중 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고, 특히 3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전태일 평전(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하는가 하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망원동 수재사건, 대우어패럴사건, 이경숙 사건(여성 조기정년제 철폐)등을 변론하였고, 변호사 협의회 인권보고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또한 보도지침사건, 박길재 사건(상봉동 진폐증 보상문제)을 담당하였으며, 기타 노동, 빈민, 공해, 학생운동 관련사건 등 인권변호에 전력하던 동지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만들고 나서 지병인 폐암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한 채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47년 3월 26일 대구에서 출생 1965년 3월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 1969년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입학 1971년 10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1983년 변호사 개업, 전태일 평전 집필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변론 1990년 9월 폐암 3기로 입원 1990년 12월 1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채광석 사진
  • 이름: 채광석
  • 당시 나이: 39
  • 1975년 4월, 서울대 김상진 동지가 할복자살하는 등 유신반대운동이 고조되자,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여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다. 5월에 김상진 동지 추모시위가 힘차게 벌어지자 사범대 시위책임을 맡았던 채광석 동지는 체포, 구속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40여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이때의 고문체험으로 <애국가>, <검은 장갑> 등의 시를 쓰기도 했다. 동지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을 계기로 이후 타계할 때까지 문학운동을 비롯한 문화운동 전반에 걸쳐 맹렬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문화예술분과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박노해 시인을 발굴하여 민중문학의 한 맥을 이루게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던 동지는 1987년 '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민주시민대동제'에 참여하였다가 뒤풀이를 끝내고 귀가하던 길에 폭주하는 택시에 받혀 세상을 떠났다.
  • [프로필]
    1948년 7월 11일 충남 서산군 안면면 출생 196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입학 1975년 5월 김상진 동지 추모시위로 구속 1983년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 시작 1984년 3월 14일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 실행위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1985년 시집 '밧줄을 타며', 사회문화론집 '물길처럼 바람처럼' 발간 1987년 7월 12일 폭주하는 택시에 받혀 운명 팔당 공원묘지에 안장
최정환 사진
  • 이름: 최정환
  • 당시 나이: 36
  • 척수 장애와 교통사고로 인해 1급 1호의 중증장애인이었던 동지는 서초구 방배역 부근에서 오토바이에 가판을 달고 테이프 노점상을 시작하여 삶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서초구청의 노점상 탄압으로 생활이 어려웠다. 그러한 가운데 95년 3월 8일 오후 8시 30분경 서초구청의 살인적인 단속에 장사하는 스피커와 밧데리통을 빼앗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그날 오후 9시 30분경 서초구청을 방문 담당자를 면담 후 압수된 물품을 찾으려 했으나 심한 모멸감만 받고 좌절당했다. 이에 분노한 동지는 결국 9시 45분경에 분신하고 3월 21일에 운명하였다. 세계화를 지향한다는 문민정부에서조차 짓밟힐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의 생존권을 지키고자, 동지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이다.
  • [프로필]
    1959년 출생 1994년 6월 방배역 부근에서 테이프 노점상 시작 1994년 6월 노점단속으로 전치 8주 부상 1995년 3월 8일 9시 45분경 서초구청의 살인적인 노점상 단속에 분신으로 항거 1995년 3월 21일 새벽 1시 50분 운명 용인 가톨릭 묘지에 안장
최종길 사진
  • 이름: 최종길
  • 당시 나이: 41
  • 중앙정보부(前 국가안전기획부)는 73년 10월 25일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 명단에는 73년 10월 19일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동지도 들어 있었다. 이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해명은 동지가 "범행사실을 자백한 후 국내 간첩조직망에 대한 여죄를 조사받던 중 용변을 보겠다고 변소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에 대한 국내외적인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간첩단 조작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중앙정보부의 연락을 받고 동지가 출두하기 이전 동베를린을 거쳐 평양에 다녀온 것으로 사건 조서가 꾸며져 있었고, 투신했다는 현장을 공개하지 않고, 부검을 완강히 거부한 속에서 유가족을 협박해 장례를 급히 치루게 만든 점은 고문에 의한 타살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으로 간주된다.
  • [프로필]
    1932년 충남 공주 출생 1955년 3월 서울대학교 법대 졸업 1955년 5월 서울대학교 법대 석사과정 1958년 서독 쾰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1962년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 1973년 10월 16일 중앙정보부에 출두 1973년 10월 19일 조사받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함석헌 사진
  • 이름: 함석헌
  • 당시 나이: 88
  • 함석헌 선생님은 두 번이나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일제시대때는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을 거부하여 오산학교를 사임당하였고, 동경에서 계우회사건으로 평양 대동경찰서에 1년간 복역하기도 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인 선생님은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에서 용암포 자치위원장, 용산군 자치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56년부터는 '사상계'를 집필하면서 1961년에는 5·16을 정면으로 공격하는「5·16어떻게 볼까?」를 발표하였고, 1970년에 잡지 「씨 의 소리」를 창간하였다. 1971년에는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는 한편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1974년에는 윤보선·김대중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만들었고, 1979년 11월 23일, 명동 YWCA사건으로 계엄사에 끌려가 15일간 구속되기도 하는 등 암울한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1989년 2월 4일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01년 3월 13일 평북 용천군 출생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학업 중단 1938년 3월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을 거부하고 오산학교를 사임당함. 1940년 8월 동경에서 계우회사건으로 1년간 복역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용암포 자치위원장, 용산군 자치 위원장 됨 1961년 6월 5·16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글를 발표 1971년 8월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 구성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조직, 대표위원 1974년 11월 윤보선·김대중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만듬, 대표위원 역임 1979년 11월 23일 명동 YWCA사건으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구속 1985년 두 번째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 1989년 2월 4일 운명
황인철 사진
  • 이름: 황인철
  • 당시 나이: 53
  • 황인철 동지는 유신 시대 이래 20년 가까이 권력의 폭압과 횡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해 온 인권변호사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권변호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불모의 시대인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민청학련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 70, 80년대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았는데 민청학련 사건, 김지하 반공법위반사건, 3.1구국선언사건, 동아·조선투위사건, 청계피복노조사건, 한승헌 필화사건, 동일방직노조사건, YH사건,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원풍모방사건, 강원대 성조기 방화사건, 오송회 간첩사건, 대우어패럴사건, 서울미문화원사건, 건국대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사건, 문익환 목사 및 임수경·문규현 방북사건, 윤석양사건 등의 사건이 그것이었다. 또 자신을 포함한 젊고 진보적인 변호사들이 함께 조직한 '민주사회을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결성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 [프로필]
    1940년 1월 24일 충남 대덕 출생 1961년 10월 13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1962년 2월 서울대학교 법대 졸업 1981년 '전국자폐아부모회' 회장 역임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역임 19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 역임 1990년 민주화실천변호사모임 대표간사 역임 직장암 진단을 받음 1991년 윤석양 사건 변론 맡음 1992년 '계명복지회' 회장 역임 1993년 1월 20일 지병으로 운명 경기도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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