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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수 사진
  • 이름: 석광수
  • 당시 나이: 30
  • 86년 인천 공성교통에 입사해 91년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피선되어 모든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동지는 6월 14일 회사측의 성실한 교섭자세를 촉구하기 위해 벌인 차량시위 당시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차량을 견인하자 이에 맞서 앞장서서 싸웠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지도부 및 조합원 210여명을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분노한 석광수 동지는 "혼자만 벌어먹고 살려고 하면 하루 갈 것이 일주일 간다"며 열변을 토하고 밤새 북을 치며 노동가를 부르다가 아침 6시 20분경 분신하였다. 권력의 폭력집압과 무자비한 강제 연행에 항의하던 석광수 동지는 사업주의 비열하고 무책임한 임금협상에 온몸으로 항거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 이사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잠적했고 이에 가족들의 보름이 넘는 농성과 노동조합 집행부의 노력 끝에 장례를 치루었다.
  • [프로필]
    1961년 강원도 삼척군 출생 1982년 강국택시에서 3년간 근무 1986년 인천 공성교통에 입사 1991년 6월 14일 지도부 연행에 항의, 차량시위에 적극 참가 1991년 6월 15일 지도부 석방을 요구하며 분신 1991년 6월 24일 10시 28분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성완희 사진
  • 이름: 성완희
  • 당시 나이: 29
  • 성완희 동지는 1987년 8월, 강원탄광에서 파업을 주동한 후 회사측의 계속적인 탄압에 맞서 싸워왔으며 87년 12월과 88년 2월 두차례나 부당해고를 당했으나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복직을 쟁취한 바 있었다. 그러나 동료가 자신의 복직투쟁을 도와준 혐의로 해고되자 자신의 일보다 더 열심히 복직투쟁을 전개하였고, 결국 노동부와 지방 노동위원회에서도 복직판정과 복직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강원탄광 측이 이를 거부하자 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복직을 위한 단식투쟁에 참여하였다. 단식 8일째인 6월 29일 동지는 동료 5명과 함께 휘발유 1통, 석유 1통을 들고 노동조합사무실에 들어가 사무실을 폐쇄하고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곧이어 구사대원들이 사무실로 진입을 시도하자 동지는 "들어오기만 하면 분신하겠다"고 말하였으나 구사대원은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난입하였고 동지는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불을 그었다. 결국 죽음과 싸우다 7월8일 아침 7시20분 끝내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59년 6월 24일 충북 제천 출생 1974년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 봉제공장에 취업 1986년 10월 태백시 철암동 강원탄광에 채탄후산부로 입사 1987년 8월 파업시 노동자 대표로 선출되어 파업을 승리로 이끔 1988년 2월 경비직으로 부당 전직 당했다가 투쟁으로 원직복귀 1988년 6월 21일 동료해고자 복직을 위해 시위에 돌입 1988년 6월 29일 노조사무실에서 5명이 단식농성 중 어용노조 대의원의 각목 습격에 맞서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1988년 7월 8일 원주 기독병원에서 운명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송철순 사진
  • 이름: 송철순
  • 당시 나이: 25
  • 88년 6월 28일부터 세창물산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어용 노사협의회 타도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였으나, 회사측은 휴업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노동조합 사무장이던 송철순 동지는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파업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집회를 준비하던 중, 허술하기 짝이 없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현수막을 설치하기 위하여 작업을 하다가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공장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지는 동료 노동자들과 이웃 노동조합원들의 안타까움과 분노 속에 결국 17일 밤 9시45분경, 25세의 생을 마감했다. 다음날 세창물산 건물 벽에는 동지가 걸어놓은 '사장놈이 배짱이면 노동자는 깡다귀다'라는 현수막이 마침 내린 비에 젖으며 나부끼고 채 걸지 못한 현수막 '노동자의 서러움 투쟁으로 끝내자'가 지붕에 걸려 있었다.
  • [프로필]
    1963년 7월 13일 강원도 화천 출생 1982년 인천 신명여자고등학교 졸업 1987년 1월 세창물산 입사 1988년 6월 29일 노동조합 창립과 함께 사무장으로 선출 1988년 7월 15일 '파업기금마련 연대집회' 준비로 현수막 설치 중 추락 1988년 7월 17일 운명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신용길 사진
  • 이름: 신용길
  • 당시 나이: 34
  • 신용길 선생님은 89년 7월 전교조 부산지부에 가입, '1989년 한국 여름 그리고 교육 대학살' 등을 발표하는 등 교육민주화에 앞장서오다 그해 8월 전교조 부산지부 결성식 때 자작 축시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구덕고에서 파면되었다. 그리고 그해 8월 25일 출근 투쟁 중 국가공무원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데 항의, 단식농성을 벌이다 부산구치소로 넘겨진 이후 위궤양이 악화돼 결국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다. 선생님은 그 뒤 날마다 부산지부 사무실에 출근하며 교육시집 발간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다 위의 통증을 견디지 못해 입원했으나 위암선고를 받게 되었고 결국 운명하였다. 선생님은 운명하기 직전 "눈만이라도 남아 동지들이 복직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라는 유언과 함께 동아대 병원에 두 눈을 기증하였다. 동지의 부릅뜬 두 눈은 앞을 못보는 가난한 뱃사람과 또 한 여인에게 이어져 지금도 변혁과 싸움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 [프로필]
    1957년 5월 7일 서울 출생 1982년 부산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8년 부교협 문화부장 역임 1989년 7월 전교조 부산지부 결성식에서 축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구덕고등학교에서 파면 1989년 8월 출근 투쟁을 하던 중 경찰에 연행,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발병한 위궤양으로 병보석 1990년 1월 전교조 부산지부 교과위원장. 1991년 3월 9일 동아대 부속 병원에서 위암으로 35세 나이로 운명 양산 솥발산 공원에 안장
신호수 사진
  • 이름: 신호수
  • 당시 나이: 23
  • 신호수 동지는 1986년 6월 11일 오후 1시 30분경, 인천시 남구 소재 도화가스 충전소에 파견되어 가스통 밸브작업을 하고 있던 중 서울시경 대공수사과 형사라고 신분을 밝힌 3명의 남자에 의해 연행된 이후 소식이 끊겼다가 8일만인 19일 10시경, 3명의 방위병에 의해 고향집으로부터 불과 4km거리인 전남 여천군 대미산 중턱의 한 동굴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동지가 방위근무할 때 장판 밑에 모아둔 북한의 삐라를 문제삼아 대간첩작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장흥공작"이라고 명명하고 동지를 연행한 것이 국회에 제출된 국정감사자료에 의해 밝혀졌다. 사건 당시 여수경찰서는 가족에게 통보도 하지 않은 채 형사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추정하고 변사사건으로 처리해 버렸다. 게다가 1986년 6월 21일, 발견 이틀만에 전남 여천군 돌산읍 평사리 공동묘지에 가매장하고 6월 27일에야 가족에게 통보했다.
  • [프로필]
    1963년 8월 8일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2월 성동중학교 졸업 1983년 8월 검정고시 합격 1985년 6월 방위 근무 1986년 6월 11일 인천시 남구 소재 도화가스에서 근무 중 형사들에 의해 연행된 후 행방불명 6월 19일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변사체로 발견됨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양봉수 사진
  • 이름: 양봉수
  • 당시 나이: 28
  • 양봉수 동지는 91년 말 노동조합의 성과분배 요구투쟁에 대항하는 회사측에 의해 1차 부당해고되었다가 93년에 복직되었다. 복직 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동지는 작업강도 조정을 위해 같은 사업부 대의원들과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회사측과의 협상이 계속되어 '신차 투입은 대의원들과 합의한 후 실시한다'고 약속하였으나, 이를 파기하였고 동지는 대의원으로서 이에 강력히 항의하며 신차를 투입한 생산 라인을 잠시 중단시켰다. 이를 이유로 동지는 해고당했고, 회사측은 동지를 경비 20여명을 동원하여 정문 밖에 내던지는 폭력을 행사하고 정문출입을 저지하였다. 95년 5월 15일, 동지는 그날도 출입을 저지당했고, 법과 단체협약마저 무시하고 계속되는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온몸에 신나를 붇고 정문으로 들어가려했으나 경비들은 이를 무시하고 집단으로 저지하였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동지의 몸에 불이 붙게 되었고 결국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7년 4월 전남 무안 출생 1986년 2월 목포 덕인고등학교 졸업 1990년 10월 현대 자동차 입사 (의장 2부) 1991년 소위원 활동 1992년 2월 성과분배투쟁 관련으로 해고 1993년 1월 원직 복직 1994년 의장2부 소위원회 부의장, 대의원 당선 1995년 2월 의장2부 마르샤 투입 관련 회사측의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라인정지건으로 두번째 해고 1995년 5월 12일 공동소위원연합 2기 출범식 참석을 위해 정문 진입시 경비들의 폭력적인 저지에 항거하며 본관정문 앞에서 분신 1995년 6월 13일 대구 동산병원에서 31일간 사투끝에 운명 양산 솥발산 공원 묘역에 안장
오범근 사진
  • 이름: 오범근
  • 당시 나이: 0
  • 오범근 동지는 산재 이후 호봉도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야간 경비근무 중 옥상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힘을 지탱하지 못하고 떨어져 골수염으로 무릎뼈를 깎는 수술을 하는 등 노동력을 상실하였으나, 산재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88년 3월 7일, "사직강요, 해고 위협, 어용노조 물러가라", "25% 임금인상, 학자금, 가족수당 쟁취하자"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구사대의 잔인한 폭력으로 해산되자 동지는 10일 새벽 회사로 출근해 같이 근무하는 수위들을 만나 폭력해산의 부당함을 얘기하고 있는데 회사측의 호출을 받자, 항의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4층 관리자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후 동지는 음독한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며, 그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없이 같은 날 10시20분경에 운명했다. 3월 20일 새벽 5시 30분 동지의 시신은 400여명의 전경이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병원에서 고향으로 옮겨졌다.
  • [프로필]
    1973년 후지카 대원전기 입사 1976년 프레스공으로 작업 중 손가락 네 개가 잘리는 산재를 당함 당시 4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며 이후 수위로 근무 1988년 3월 10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오용철 사진
  • 이름: 오용철
  • 당시 나이: 40
  • [프로필]
    1956년 1월 27일 출생 1975년 성남고등학교 졸업 1984년 제1회 6급 공채 합격 1988년 5월 서울 개봉전화국 발령 1988년 어용노조 퇴진을 위한 "전민현"건설 1988년-91년 어용퇴진위원장 직선제 관철을 위해 전국적인 '노조민주화추진위'활동 전개 1991년 '체신부 부당간섭 저지투쟁위원회'결성 1991년 11월 전남 여수 무선전신국 강제발령 1995년 민주노동조합 활동으로 서울구치소 수감 1996년 6월 18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운명 철원 목련공원묘역에 안장
오원석 사진
  • 이름: 오원석
  • 당시 나이: 52
  • 오원석 동지는 지병인 간암으로 8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교육민주화 활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경기.인천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50년을 바라보는 반백의 나이에 뒤늦게 교육민주화운동에 투신, 90년 9월 53세의 현직 조합원으로 영면하기까지 동지는 오직 참교육의 나무를 일구는 것이 꿈이었다. 대학 3학년 때 등록금을 마련 못해 군에 있을 때도 교사의 꿈은 결코 버릴수 없어 예편을 서두르고 서른 여섯의 늦은 나이에 대학에 졸업, 결국 교단에 섰다. 참교육비 제막식에서 동료교사는 추모시를 통해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밥풀을 뜯어 먹으며 숨조이고, 복종하고, 양심을 파는 동료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직선의 말이 살아 숨쉬고, 진실이 즐거이 깔린 세상이 올 때까지 마음 비우고 나를 바쳐 섬기라' 하시던" 이라며 동지의 정신을 기렸다.
  • [프로필]
    1938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73년 고려대 영문과 졸업 1990년 전교조 경북지부 인천지부로 부터 참교육상 수상 1990년 9월 지병인 간암으로 운명 1992년 4월 18일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에 참교육비 세워짐
원태조 사진
  • 이름: 원태조
  • 당시 나이: 37
  • 90년 8월 30, 금강공업(주)은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공고에 금강공업 노동조합은 농성에 돌입하였고, 이에 안산 경찰서 정보과장이 농성장에 와서 협박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던 중 공권력이 투입되어 경찰들이 조합원들을 에워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조합원앞으로 경찰이 계속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러자 박성호 동지(부위원장)가 생수통에 담겨 있는 신나를 몸에 붇고 "더이상 가까이 오면 분신하겠다"고 하자 경찰 현장책임자가 신나통을 손으로 치면서 주변에 있던 조합원들의 몸에 뿌려졌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원태조 동지 (후생복지부장)도 온몸에 신나를 끼얹었다. 이때 라이터를 들고 있던 부위원장의 손을 낚아채면서 순식간에 원태조, 박성호 동지가 불덩이로 변했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경찰은 소화기를 뿌리며 조합원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 [프로필]
    1953년 7월 7일 출생 1989년 안산 금강공업(주)에 입사 1990년 8월 10일 노동조합 결성시 후생복지부장으로 추대 1990년 8월 30일 경찰의 폭압 진압에 의해 분신, 전신 80% 화상 1990년 9월 18일 오전 6시 30분경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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