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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환 사진
  • 이름: 이경환
  • 당시 나이: 19
  • 1967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대성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하던 이경환 동지는 1986년 6월 서울 청량리 맘모스 호텔 옥상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투신했다. 동지의 마지막 일기에서 선생님들을 비롯한 기성세대들의 이기주의와 무관심을 비판하면서 조국 사랑의 순수한 열정으로 사회모순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굶주리는 노동자, 농민들을 걱정하고 미제국주의를 비판하여 핵제물이 되어가는 이 땅에서 할 말을 못해 가슴은 막히고, 듣지 못해 귀는 멀고, 말을 못해 벙어리 되고, 볼 수 없어 눈이 머는 세상을 가슴으로 움켜쥐고 슬퍼하면서 암흑의 땅에 한줄기 호롱불이 되고자 했다.
  • [프로필]
    1967년 9월 경기도 양주군 출생 1986년 2월 창원 남고등학교 졸업 서울 대성학원에서 재수 1986년 6월 5일 청량리 맘모스호텔 옥상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투신하여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내창 사진
  • 이름: 이내창
  • 당시 나이: 27
  • 당시 중앙대 안성교정 총학생회장이던 이내창 동지는 8·15 민족해방일 기념식을 앞둔 89년 8월 14일 오전에 학교로 찾아온 도연주, 백승희 등과 동승하여 남해안 절해고도 거문도 앞바다에서 8월 15일 변사체로 떠올랐다. 도연주는 안기부 인천분실 직원이고, 거문도 주민들의 증언으로 이내창 동지와 도연주, 백승희와 같이 있다가 감쪽같이 섬에서 사라진 사실이 밝혀졌다. 그후 경찰은 이씨의 죽음을 단순 익사로 결론지었으나, 총학생회장으로서 매우 바쁜 일정에 쫒기던 동지가 거문도까지 생명부지의 사람들과 동행해서 간 점, 단순 익사에서는 보기 힘든 7군데의 피하출혈의 흔적 등으로 인해 목적의식적 유인 타살이라는 의문을 남기고 있다.
  •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중동고등학교 졸업 1983년- 85년 군 복무 1986년 3월 중앙대학교 예술대 조소학과 입학 1988년 조소학과 학회장 1989년 중앙대학교 안성교정 총학생회장 1989년 8월 15일 거문도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동수 사진
  • 이름: 이동수
  • 당시 나이: 24
  • 1986년 5월 20일 오후 3시 30분경 오월제 행사 가운데 문익환 목사님의 연설 중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구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폭력경찰 물러가라", "미제국주의 물러가라", "어용교수 물러가라" 등을 외치며 이동수 동지가 불덩어리가 되어 떨어진 것이다. 아크로폴리스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극도의 놀람과 흥분에 휩싸였다. 7m 아래로 떨어져서도 한동안 불길이 오르다가 동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위에 쏟아지는 최루탄의 매운 연기, 폭발음,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아크로폴리스를 향한 곳곳의 통로에서 색색의 헬맷을 쓴 사복 기관원들과 중무장한 전경들이 들이닥쳤다. 극도의 비분에 빠진 학우들은 다시 열을 지어 전경들과 싸웠고 그들은 최루탄이 매서워서가 아니라 조국의 현실이 가슴아파 진한 눈물을 흘렸다. 동지는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오후 4시경 운명했다.
  •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81년 3월 숭실대학교 입학 1983년 서울대학교 농대 원예학과 입학 1983년 4월 군입대 1985년 10월 군제대 1986년 5월 20일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분신, 운명
이상렬 사진
  • 이름: 이상렬
  • 당시 나이: 26
  • 이상렬 동지는 상주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85년 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7년 숭실대에 들어오기 전 2년동안을 구로공단의 닭장집에서 노동자의 삶을 걸어왔으며, 1년은 매형의 이발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숭실대에 입학하자마자 6월 항쟁의 거리를 힘차게 달리면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수배 생활을 겪고 난 후 군에서 3년을 보내고 복학하였다. 동지는 복학한 후에도 야간대학 부학생회장으로 역임하면서 솔선 수범하는 자세로 학우들과 만나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던 중 지나친 과로로 자취방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6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 1985년 상주고등학교 졸업 1986년 공장일과 막노동 생활 1987년 숭실대학교 화공과 입학 7월 6월 항쟁 관련 구속영장 발부받음 1992년 야간강좌 부총학생회장 당선 4월 12일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운명
이승삼 사진
  • 이름: 이승삼
  • 당시 나이: 21
  • 이승삼 동지는 1986년 12월 16일에 입대하여 훈련을 마치고 1987년 2월 2일에 강원도 원주에 있는 36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부대배치 연락을 받은 동지의 어머니는 2월 16일 잠깐 면회를 하였고, 다시 3월 1일에는 외박을 허락받아 같이 밤을 보냈다. 그런데 헤어진지 이틀 후 가족들에게 동지의 운명소식이 전해졌다. 헌병대에서는 문이 잠겨있던 중대장실에서 동지를 발견했고, 자살한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러나 납득할만한 자살 동기가 없고, M16소총으로 자기 목에 두발을 쏜 뒤 총을 난로 옆에 세워두고 난로가에 앉아 운명하였다는 결론이 나오는 죽음의 상황도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 이런 상황으로 보아 이승삼 동지는 누군가에 의해 타살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동지의 아버지는 아직도 아들의 타살이 자살로 조작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 [프로필]
    1966년 부산 출생 1986년 3월 부산전문대학교 전기과 입학 1986년 12월 16일 논산훈련소 입소입대 1987년 2월 2일 36사단 공병대에 배속 1987년 3월 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이윤성 사진
  • 이름: 이윤성
  • 당시 나이: 19
  • 이윤성 동지는 1981년 성균관대학교 역사철학계열에 입학한 뒤에 진리탐구에 남다른 열정을 품었고, 자신의 주변뿐만 아니라 사회, 역사 전반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창생활에 임했다. 2학년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써클의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던 중 11월 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 때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인문과학연구회 회장이라는 것이 밝혀져 3대독자이고, 시력이 나빠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1월 7일 새벽에 신체검사도 받지 않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조건에서도 군복무를 하던 동지는 제대를 8일 앞두고 의문을 죽음을 당하였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동지가 북한에서 날려보낸 삐라의 일종인 안전보장증을 가지고 있었던 일로 죽음 직전에 군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군수사기관에서는 조사가 끝난 후 자대로 돌아가 목을 매어 죽었다고 통보했다.
  • [프로필]
    1964년 1월 3일 출생 1981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역사철학계열 입학 1982년 인문과학연구회 회장직을 맡음 1982년 11월 3일 가두시위에서 연행 11월 7일 강제징집됨 1983년 5월 4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이이동 사진
  • 이름: 이이동
  • 당시 나이: 21
  • 이이동 동지는 전남대 사범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헌신하다 1987년 입대를 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5일 총격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군당국은 불행한 가정환경을 비관해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병장의 말에 따르면 오후 2시부터 충정교육을 실시했는데, 경비 2중대 중대장이 강연을 하고 나서 "대학생이 데모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사람 나와라"했는데 아무도 나가지 않자 이이동 동지를 지목하여 이야기하라고 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중대장이 분개해서 동지를 구타했고 동지가 실신하자 이이동 동지를 엎어 내무반으로 옮겨 한참 후 의식이 회복되고 아프다고 소리치며 고통스럽게 내무반에서 뒹구니까 중대장이 병장을 시켜 업고 중대장이 뒤를 따라 나갔고 그후 28분 정도 지나 총성이 들렸다는 것이다. 사입구가 사출구보다 더 크다는 것과 목격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면 타살당했다 짐작할 수 있다.
  • [프로필]
    1966년 4월 전남 광주 출생 1985년 2월 숭일고등학교 졸업 1985년 3월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입학 학생운동에 헌신 1987년 1월 휴학, 입대 육군 군수사령부 제9탄약창 경비중대 배치 1987년 6월 15일 총격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함
이재용 사진
  • 이름: 이재용
  • 당시 나이: 23
  • 당시 용성총련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의회 공동의장으로 그 지치기 쉬운 수배생활 속에서도 늘 승리를 확신하던 이재용 동지는 경찰의 학내 침탈 소식을 듣고 급히 몸을 피하다가 경원대 앞에서 교통사고로 운명하였다. 다음은 동지의 추도식에서 동료가 낭독한 추도사 중의 일부이다. "암울한 식민지 조국, 밤의 어둠이 걷히지 않고 민족해방의 찬연한 신새벽이 동트기 전에는 그대를 보내지도, 보낼 수도 없다는 것을. 투사 이재용 동지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우리들의 살을 태워, 우리들의 뼈를 깎아, 기필코 이 피의 전투에서 민족해방의 위업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국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되는 새 날, 동지와 함께 성남에서, 어머니 조국강토에서 한판 춤을 출 것입니다."
  • [프로필]
    1964년 10월 7일 경기도 양평군 출생 1982년 2월 성일고등학교 졸업 1984년 3월 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영어과 입학 1986년 9월 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학회연합회장 1987년 6월 용성지역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회회 공동의장 1987년 6월 25일 경찰의 침탈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새벽 2시경에 운명
이재호 사진
  • 이름: 이재호
  • 당시 나이: 21
  • 1986년 4월 28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4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400여명의 서울대 2학년 학생들이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반전반핵 투쟁위원장 이재호,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 동지는 전방입소 거부투쟁을 지도하던 중 예식장 옆 3층건물 옥상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며 강제진압하려는 폭력경찰에 경고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폭력경찰의 강제진압 도중, 두 동지는 분신으로써 항거하였다. 이재호 동지는 전신 80%이상의 3도 화상을 입었으며, 김세진 동지는 전신 60%의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투쟁을 계기로 반미구국투쟁은 급속히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한국의 운동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프로필]
    1965년 3월 15일 전남 광주 출생 1983년 2월 광주 송원고등학교 졸업 198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86년 3월 18일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 산하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 위원장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 양키고흠을 외치며 분신 1986년 5월 26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창환 사진
  • 이름: 이창환
  • 당시 나이: 23
  • 1994년 1월 이창환 동지는 옥구군 회현면으로 후배 4명과 겨울농활을 수행하러 갔다가 27일 저녁 같이 식사를 하던 농민 아저씨가 실의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쌀투쟁의 희망을 주기 위해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들은 밤 늦게까지 동지가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섰고 아저씨의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이창환 동지의 주검이 발견되었고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뇌진탕으로 운명하였거나 실신하여 동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 [프로필]
    1971년 9월 7일 출생 1990년 이리 황동고등학교 졸업 전북 산업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91년 전북 산업대학교 경상대 사회부장 산업대학교 개혁안 철폐를 위한 투쟁부국장 역임 1992년 노래패 「휘파람」창설 1993년 전북 산업대학교 8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역임 1994년 1월 27일 겨울 농활 수행 중 사고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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