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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영 사진
  • 이름: 유구영
  • 당시 나이: 39
  • 고려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유구영 동지는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거쳐 서노협 선봉대장 및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던 중 간암에 걸렸음을 알았다. 질환의 성격상 육체적인 무리는 치명적인 것이었음에도 각종 수련회나 교육 등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렇듯 병마와 싸워 나가면서도 활동을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 건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95년 12월부터는 민주노총 정책기획실 정책부국장으로 일하였다. 96년 5월 2일, 병세의 악화로 인해 여러 번의 입원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새벽 2시 25분경, 원숙한 40대의 생애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57년 출생 1981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한국신학대학원 입학 1988년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1990년 대한 중전기 분회장 1993년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정책실장 1995년 민주노동정책 기획실 정책부국장 1996년 5월 2일 새벽 2시25분경 간암으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유인식 사진
  • 이름: 유인식
  • 당시 나이: 24
  • 유인식 동지는 1982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내 써클에 가입해서 고교시절부터 생각해왔던 민주화의 대열에 앞장섰으며, 결국 노동자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함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1985년 구로공단 내 금속공장에 들어갔으나, 입사한지 몇 개월 후에 신분이 드러나서 공장을 나와야만 했다. 그 후 1986년 9월부터 인천대 앞에서 사회과학 전문서점 "밀물"을 운영하며 또다른 현장생활을 준비해 샘터교회에 첫발을 내디뎌, 87년 5월 샘터교회 청년회를 만들었다. 그러던 동지는 87년 7월말 수련회에 실무위원회 조직부원으로 참가하였다가 동료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자 사람과 사람의 손을 연결하여 최선두에 서서 동료를 구하려고 하였으나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동지는 자신의 안녕보다는 노동자들의 슬픔을 더욱 깊이 생각했으며, 고인이 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보다는 동지를 더욱 사랑했던 것이다.
  • [프로필]
    1963년 7월 인천 출생 198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입학 1985년 노동현장에서 청년회운영위원으로 활동 1986년 샘터교회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1987년 한국기독노동자 인천지역연맹 대표자회의 성원, 6월 대투쟁 적극 참여 1987년 8월 1일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체육부장 으로 참여, 동료를 구하고 운명
유재관 사진
  • 이름: 유재관
  • 당시 나이: 29
  • 광역의회 선거가 민자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민중운동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에 인천 동서식품에 천 여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였고, 안산의 동영 알루미늄에는 4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켰다. 또한 26일 인하대 총학생회장이 교내에서 불법적으로 강제연행되었고, 27일에는 인천대에 160여명의 백골단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강제 연행하던 중 학생들에게 중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시간에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에서 정기총회를 준비하던 회원들은 새벽 1시50분경 인천대 공권력 투입소식을 접하고, '인사연'도 침탈당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급히 사무실을 나오다가 유재관 동지가 3층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렸으나 실족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서울 한성고등학교 졸업 1981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입학 1983년 학내시위 주도로 장기간 수배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로 재입학 1985년 고려대학교 졸업 1987년 인천 신흥목재(현 우아미 가구)에서 활동 중 해고 1989년 인천목재노동자회 실무자로 활동 1990년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 남부 노동반 반장 '인사연' 제8차 정기총회 준비위원 1991년 6월 27일 운명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
윤용하 사진
  • 이름: 윤용하
  • 당시 나이: 22
  • 윤용하 동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어려서부터 중국집 배달원, 가방공장 공원 등의 노동일을 하였다. 89년초 대학 출신 현장활동가를 만나면서 열악한 노동현실에 관해 인식하게 된 동지는, 서울 민주화직장청년연합의 풍물강습반에 등록해 활동하기에 이른다. 동지는 평소에 망월동 참배를 원했으며 91년 5월에는 5월 9일 국민대회를 맞춰 광주로 갔고, 5월 9일 분신해서 투병 중이던 박승희 동지에게 문병을 가기도 했다. 91년 5월10일 조국의 참된 자주ㆍ민주ㆍ통일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노태우 정권의 사냥감이 되고 만다는 유서를 남기고 윤용하 동지는 분신했다. 분신 이틀 후인 12일 동지는 "노동해방을 위해 분신을 생각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9년 전남 승주 출생 1981년 순천 중앙초등학교 5년 중퇴 1983년 노동일 시작 1989년 성남피혁 근무 민주화운동 직장 청년연합 회원 활동 1991년 5월 10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전남대에서 분신 1991년 5월 12일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광웅 사진
  • 이름: 이광웅
  • 당시 나이: 52
  • 이광웅 동지는 1982년 군산제일고 교사로 재직하던 중 '오송회'사건에 연루되어 교사직을 파면당하고 1987년까지 6년동안 옥중생활을 하였다. 동지는 그 와중에도 도서출판 풀빛에서 시집 '대밭'을 출간하는 등 민족문학작가 활동을 계속하였다. 감옥에서 나와 1987년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한 동지는 1989년 전교조 결성과 함께 또 다시 해직되었다.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교육의 민주화와 민족문화활동을 계속하던 와중에 1992년 지병인 암으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40년 전북 이리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1982년 군산제일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 '오송회' 사건에 연루, 6년 감옥생활 1985년 첫시집 <대밭> 출간 1987년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1992년 초대 교육문예창작회장 역임 1992년 12월 22일 오후 4시 45분 지병인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운명
이대건 사진
  • 이름: 이대건
  • 당시 나이: 32
  • 우성택시 90여 조합원들은 87년 11월 24일부터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24개 노동조합 노동자들과 연대파업을 벌여왔는데 성과없이 끝나자 88년 1월 6일 파업 19일째에 임금협상 조기체결 및 단체협약 조항의 이행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여전히 교섭에 소극적이었고 노동조합측의 요구사항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의 양보만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이대건 동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신을 감행하면서 조속한 요구수락을 촉구하였다. 평소 동지는 조합활동을 열성적으로 해왔으며 파업시에도 유인물, 벽보제작 등을 도맡아 해오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싸워왔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서도 회장에게 "배가 고파서 죽도록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뭐하러 왔느냐, 보기 싫다. 당장 나가라"고 외치며 분개하는 등 운명 직전까지 투쟁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 [프로필]
    1956년 6월 16일 경남 창녕군 출생 1978년 상은(주)에 입사 1981년 5월 10일 마산 (주)우성택시 입사 1988년 1월 6일 파업농성 19일째에 협상이 결렬되자 단체 협상 위반에 항의하며 회사앞에서 분신 1988년 1월 8일 부산 복음병원 중환자실에서 운명 경남 창녕군 대지면에 안장
이대용 사진
  • 이름: 이대용
  • 당시 나이: 24
  •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동지는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어 흔들림 없이 싸워나갔으며, 1988년 진흥요업에서 착취와 비인간적 대우에 반대하는 투쟁을 주도하며 앞으로 이땅, 모든 노동자들이 자기의 위치와 권리를 찾고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노동자로 살아갈 것을 재결단하였다. 그 후 동지는 동양튜브, 선창산업 등에서도 변함없이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던 중 87년 8월1일부터 3일까지 매포수양관에서 열린 인천기노련 주최 '인천지역노동자 여름수련회'에서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거의 의식을 잃은 동지를 구출하고 다시 또 물 속에 뛰어들었다가 운명하게 되었다. 동지의 삶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고 불의에는 한치의 용서와 타협없는 투사였다.
  • [프로필]
    1963년 4월 3일 전북 고창 출생 1977년 인천 석남동소재 선학알미늄 입사, 야간중학교 입학 1986년 동양튜브에서 임금인상 30%쟁취 투쟁 1987년 8월 1일 산마루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에 참여,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이문철 사진
  • 이름: 이문철
  • 당시 나이: 34
  • 88년 6월 27일 대원여객의 노동자들이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운행을 거부하자, 회사측은 승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동지를 부당 해고시켰다. 이에 동지는 부당 해고에 항의하며 삭발을 결의하고 연장근로수당 지급과 사장면담을 요구하던 중, 부당한 해고조치에 격분하여 신나를 온몸에 붓고 분신을 감행하였다. 병원에서도 "업주들이 기사들을 속여먹고 노예취급을 한다. 돈 몇푼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 노동자를 하인이나 종취급하는 사용자들의 정신상태를 뜯어 고쳐야 한다. 주종관계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부인과 세명의 자식들을 남기고 산화하여 갔다.
  • [프로필]
    1954년 충남 당진 출생 1969년 충남 당진중학교 졸업 1970년 인천 신진자동차 공업사에 정비공으로 입사 1986년 대원여객 입사 1988년 10월 부당하게 해고당함 1988년 11월 1일 부당해고와 연장근로 수당 미지급에 항의투쟁 중 분신 1988년 11월 6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이상남 사진
  • 이름: 이상남
  • 당시 나이: 30
  • 87년 9월 12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임원 개선 명령 움직임에 대하여 그룹노동조합협의회의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현대 중공업 민주노동조합 총무부장 김형권씨가 노동자들에게 발표한 성명서를 복사하기 위해 엔진 노동조합 사무실에 왔다. 이때 정체 불명의 괴한 30여명이 현대 중공업 경비대장 조남길을 선두로 엔진 노동조합사무실에 무력으로 집단 난입하여 김형권씨를 무차별 폭행하며 봉고차에 밀어 넣었다. 이에 노동조합 사무실에 있던 임원들이 봉고차를 막고 저지시켰고 휴식시간을 갖고 있던 이상남 동지를 비롯한 다수의 노동자들이 이에 합세하였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봉고차는 그냥 전진했으며 이 와중에 동지는 차 앞바퀴에 머리와 대퇴부가 끼어 5m를 질질 끌려가 중상을 입었다. 이후 동지는 1년 8개월의 긴 투병기간 중 끝내 숨지게 되었다.
  • [프로필]
    1959년 전남 신안군 비금면 출생 1984년 10월 1일 현대 엔진 공업에 입사 상기철구 공장 기능직 사원으로 근무 1987년 9월 12일 현대중공업 구사대 차량에 깔려 중상 1989년 5월 16일 물리치료 직후 화장실에서 실신, 심장마비로 612일간의 사투끝에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상모 사진
  • 이름: 이상모
  • 당시 나이: 20
  • 대우조선은 노동자들간의 분열을 조장하고자 '상록회'라는 구사대를 조직하였다. 5차교섭까지 시도하였으나 회사는 '임금동결 아니면 폐업하겠다'며 종래의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에 29일, 박진석 동지는 반장이 나눠준 구사대 조직 '상록회' 가입 신청서를 찢어 버리고, "더이상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 "회사는 더 이상 노동자를 분열시키지 말라... 회사에서는 임금동결을 하려고 온갖 음모를 꾸미는 데 임금동결을 하면 어떤가를 보여주겠다.."며 분신하였고, 투병 중에도 "사용자는 각성해라 나는 죽지 않는다. 승리의 그날까지.."를 외치며 물러섬이 없었지만 89년 6월 결국 운명하였다. 이러한 박진석 동지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분노하던 이상모 동지 또한 이날 밤 10시 40분경 기숙사 옥상에서 분신투신하였다.
  • [프로필]
    1969년 전남 보성 출생 1985년 광주 동신중학교 졸업 1986년 광주 직업훈련원 수료, 대우조선 입사 1989년 5월 29일 대우조선 제3기숙사 7동 옥상에서 분신, 투신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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