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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 민주공원 > 민주열사 > 노동운동가
이석구 사진
  • 이름: 이석구
  • 당시 나이: 0
  • 동지는 85년에 조합을 결성하였으나 회사측의 방해로 와해되자 이에 굴하지 않고 89년 35명의 기사들과 함께 민주노동조합 결성에 성공하여 조합장으로 선출되어 노동조합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구사대를 통한 노동조합탄압에 맞서 사장에게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이런 요구가 묵살되자, 택시 위에 올라가 "노동조합탄압 중지하라"고 외친 후 분신하였다. 결국 3도의 중화상을 입고 강남시립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동지는 19일 새벽 부인과 5살과 10개월 된 어린 두딸을 남겨두고 운명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너희들끼리 일어난 일이다.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고 발뺌을 하였고, 이에 분노한 유가족과 조합측은 고인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장례를 연기하다 10월 1일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 [프로필]
    1980년 (주) 조흥택시 입사 1985년 노동조합 결성하였으나 와해됨 1987년 8월 31일 노동조합 재결성, 위원장에 선출 1987년 9월 2일 오후 8시경 노동조합 탄압중지 요구에 대해 회사측이 성의있는 답변이 없자 이에 격분하여 신나를 끼얹고 분신 1987년 9월 19일 강남 시립병원에서 치료 도중 운명
이석규 사진
  • 이름: 이석규
  • 당시 나이: 21
  •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물결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권익투쟁은 대우조선에도 휘몰아치고 있었다. 8월 22일 대우조선 회사측과 협상이 결렬되자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동지는 전경들의 무차별 진압으로 직격탄을 가슴에 맞고 오후 3시 30분경 병원으로 향하던 중 운명했다. 그러나 장지인 망월동으로 향하던 중 사측에 의해 남원의 선산으로 장지가 변경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살인경찰 구속과 피해보상, 휴업조치 철회의 조건이 수락될 때까지 장례를 무기한 연기했으나 정권과 언론매체들은 사체를 볼모로 한 노동쟁의 방법이라고 비난하면서 노동자들을 연행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며 시신을 탈취하여, 남원의 선산에 안장, 죽어서까지 편안히 눈감지 못하고 적들의 더러운 손에 또다시 죽임을 당하였다.
  • [프로필]
    1966년 11월 30일 전북 남원 출생 1982년 용북중학교 졸업 1983년 광주 직업훈련원 수료 1984년 (주)대우 조선 입사, 선각소조립부 근무 1987년 8월 22일 김우중 회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옥포아파트 사거리에서 동료들과 시위를 벌이던 중 오후 2시 40분경 폭력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대우병원으로 옮겼으나 오후 3시 30분경에 운명
이순덕 사진
  • 이름: 이순덕
  • 당시 나이: 32
  • 전교조가 채 밝아오지 않은 87년 1월 3일, 이순덕 동지는 학교 계단에서 쓰러져 5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충남에 살면서 서울 명동까지 가서 파마를 한다하였고, 학생이 자습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망신을 주던 이순덕 동지는 84년 5월 예산여고에서 박경이씨를 만나면서 참교육에 발을 들여놓고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다. 대전 체육고 재직 시에는 당시 민중교육 관련으로 해직된 교사들의 뒷바라지에 힘을 쏟고 좌천 발령된 서천의 서면 중학교에서도 학생 및 동료들과 온몸으로 함께 하였고, '깨달은 것은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곧은 성품으로 충청지역의 교육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가 끝내는 파면됐다. 양심선언문을 직접 만들어 뿌리던 이순덕 동지는 참교육의 '당찬 새벽'이었다.
  • [프로필]
    1956년 충남 예산 출생 1979년 한양대학교 체육과 졸업 1984년 홍성 YMCA중등교사협의회 회원 활동 1986년 3월 서천군 서면 중학교로 좌천 발령 6월 28일 충청지역교육민주화 실천결의대회 참가 1986년 8월 파면 1987년 1월 3일 운명
이영일 사진
  • 이름: 이영일
  • 당시 나이: 28
  • 평소 내성적이었던 이영일 동지는 89년 11월 조사통계부 차장과 90년 2월 노동조합 대의원이 되면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강한 애착을 갖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주)통일 측과 경찰은 노동조합에 대한 끊임없는 탄압을 해왔는데 노모에게 노동운동을 그만 하게 하라는 협박을 통해 고통을 주었다. 90년 5월 3일 동지는 식당 옥상에서 악랄한 노동조합 탄압에 분노, 항의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내용과 어머님에 대한 따뜻한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용과 통일이 되면 아버님 고향에 가보고 싶었는데, 어머님 뼈라도 고향에 묻어 드리고 싶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이후 이날 10시 50분경 창원병원에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2년 강원도 홍천군 출생 1981년 속초고등학교 졸업 1984년 방위병 입대 1988년 9월 자동차 정비 기능사 2급 자격증 취득 1989년 4월 (주)통일 입사 1990년 5월 3일 오전 8시경 회사측과 경찰의 지속적인 탄압에 분노, 항의하며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투신
이재호 사진
  • 이름: 이재호
  • 당시 나이: 25
  • 89년 10월 29일, 이재호 동지는 인천주안 4동에서 노동조합 관련 상담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둔기에 턱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동지는 그 동안 89년 2월 노동조합 결성 이후 계속되어온 무자비한 노동조합 탄압 속에서 파괴된 노동조합을 재건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해오다 끊임없는 노동조합 탄압의 협박속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경찰은 이를 단순 폭행치사 사건으로 넘기려 했으나, 이는 공안정국 아래서 자행되어온 정부기관의 불법적 연행과 테러, 구속, 수배, 미행 등과 긴밀히 연관되는 것으로 인권유린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의 무법 천지성을 반증하는 사건이라 할 것이다.
  • [프로필]
    1964년 5월 전북 부안 출생 중학교 졸업 후 가정을 돕기 위해 서울로 상경, 노동자 생활을 시작 1988년 1월 인천 협신사 입사 1989년 10월 29일 노조재건 활동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이종대 사진
  • 이름: 이종대
  • 당시 나이: 0
  • 89년 들어와 기아측의 폭압적 탄압이 계속되었고, 노동조합 위원장에 출마했던 배재정 씨를 이력서 누락기재 이유로 해고통보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 위원장 유호영은 조합원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임금 협상 타결을 했으며, 이종대 동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7월 3일 해고통보를 하였다. 이에 동지는 해고의 부당성에 항의하며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나의 희생을 끝으로 더이상 부당해고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라는 피맺힌 절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 [프로필]
    1988년 9월 기아산업 노동조합 대의원 당선 1989년 1월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해고노동자 복직운동을 벌임 1989년 3월 25일 복직·임금인상 쟁취을 위해 투쟁, 노조 민주화를 위해 헌신 1989년 7월 3일 오전 11시 40분 노조 사무실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1989년 7월 8일 운명
이진희 사진
  • 이름: 이진희
  • 당시 나이: 27
  • (주) 삼미기공은 1991년 4월 11일부터 임금교섭을 시작했으나, 노동조합 위원장이 회사측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타결짓고 보고하였다. 이에 분노한 노동조합 간부로서 집행부의 어용성에 분노하고 있던 홍보부장 이진희 동지는 임금인상 보고대회 도중 분신하여 90% 이상의 화상을 입고 분신, 8일만인 15일에 운명하였다. 이와 함께 조합원의 분노를 산 것은 회사측의 태도이다. 회사측은 병원에 찾아 와 가족들에게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회사에 분신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조용히 수습하자"고 회유하면서 동지의 뜻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 [프로필]
    1991년 6월 8일 인천 삼미기공에서 임금인상 보고대회 도중 분신 1991년 6월15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임종호 사진
  • 이름: 임종호
  • 당시 나이: 30
  • 임종호 동지는 89년 6월 금성사 창원대로 투쟁에 참가하였다가 수배, 구속되었고 92년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한 굴뚝 투쟁을 벌이다 또다시 구속되었다. 2차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 도중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 것에 항의, 풀어진 수갑을 재판관에게 던져 법정모독죄로 3년의 실형을 추가선고받고 청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동지는 계속되는 고난의 실형 속에서도 조합원들과 동지들에 대한 꿋꿋한 사랑을 잃지 않고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방 수형생활로 인한 정신질환 문제로 94년 8월 진주 교도소로 이감되었고 그 해 9월18일 독방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동지들 곁으로 돌아왔다. 교도소에서는 자살로 판명했으나 여러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 [프로필]
    1964년 경남 합천군 출생 1982년 동양기계 입사 (현 통일) 1983년 창원 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1987년∼88년 정당방위대 활동 1988년 노동조합 15년차 대의원 역임 1989년 금성사 창원대로 가두투쟁으로 1차구속 1991년 1년 6개월의 실형만기로 석방 노동조합 18년차 대의원 역임 1992년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해 굴뚝농성을 벌이다 2차 구속, 쟁의조정법과 업무방해로 실형 10월, 재판 도중 법정모독죄로 3년 실형 선고 1994년 9월 18일 진주교도소에서 운명
임혜란 사진
  • 이름: 임혜란
  • 당시 나이: 28
  • [프로필]
    1965년 4월 17일 서울 출생 1984년 숭의 여자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가정교육학과 입학, 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 시작 1988년 운동 위해 중퇴, 인천 링크시스템 입사 1989년 대한 트랜스(주) 입사, 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 1990년 노동쟁의와 관련하여 해고당함 업무방해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름 1991년 인천노동 선교문화원 창립에 참여 문화원 내 땀방울 산악회 간사로 활동 1992년 9월 17일 백혈병으로 입원, 투병활동 1993년 9월 9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임희진 사진
  • 이름: 임희진
  • 당시 나이: 32
  • 임희진 동지는 89년 서울 신암 중학교에서 전교조 신암중학교 분회결성으로 해직되었다. 동지의 부모에게까지 압력을 가하며 전교조 탄압을 하는 비열한 정권에 맞서 해직 후 교육선전부 활동을 했다. 91년에 동지는 암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동지들과 조직을 걱정해 발병 사실을 숨기며 참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임희진 동지는 무서운 병마와 끝내 혼자 싸우다가 92년 "전교조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른 두 해의 생을 마감했다.
  • [프로필]
    1960년 서울 출생 1980년 세종대학교 국문과 입학 1985년 광진중학교에 부임 1989년 신암중 부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 해임 1990년 강남강동 지회 교육선전부 활동 1992년 해직 3년만에 암으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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