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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림 사진
  • 이름: 최대림
  • 당시 나이: 42
  • 최대림 동지는 1998년 2월 1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입법화가 합의되어 국회통과를 앞두고 대우조선에서 건조 중이던 유조선 갑판위 25M위에서 분신 후 투신하여 운명하였다. 당시 대우조선은 IMF 경제체제를 이용해 97년말 성과금과 상여금을 뒤늦게 지불하고, 년차수당 체불과 토요격주 휴무중단 등의 의도를 노골화하면서 조기작업과 한시간 일 더하기 등을 강요하고 현장 조합원들을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동통제와 부당노동행위로 탄압해 왔다. 그리고 동지가 지게차 운전 도중 안전사고를 냈다하여 약 2개월 전에 보직을 박탈하였으며, 타 부서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해 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동지는 재벌자본과 정권의 음모에 맞서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을 저지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운명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탄압에 짓눌려 노동조합의 행동지침을 따르지 못하는 조합원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 [프로필]
    1957년 12월 10일 경남 고성 출생 1975년 고성종합고등학교 졸업 1979년 군대 제대 1985년 1월 23일 대우조선 입사 1998년 2월 13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하면서 건조중이던 배위에서 분신·투신, 운명. 양산 솥발산공원 묘역에 안장
최동 사진
  • 이름: 최동
  • 당시 나이: 30
  • 동지는 89년 인천지역노동자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안기부에 의해 밀실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자신을 자해하는 등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벌이면서 수감 중 구치소 의무과에서 지급한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이후 발작과 실어증세가 나타났다. 집행유예로 출소되었으나 구치소 수감 중 얻은 병으로 극도의 심리적 불안상태가 계속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후 종로 신경정신과에 입원, 퇴원하였으나 2개월 뒤에 한양대에서 "미제와 적들의 탄압을 고발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여 오후 10시에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0년 8월 14일 서울 출생 1980년 3월 성균관대학교 입학 1984년 10월 부천에서 노동운동에 투신 1989년 9월 4일 '인천지역노동자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구속, 집행유예로 출소 1990년 8월 7일 오전 9시 30분경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에서 분신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최명아 사진
  • 이름: 최명아
  • 당시 나이: 35
  • 최명아 동지는 민주노총 조직부장으로서 남다른 책임감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해오며 항상 격무에 시달렸다. 특히 1998년 IMF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이 재벌개혁과 고용안정을 위해 긴박한 활동을 전개하면서부터 부족한 인원으로 더욱 바쁘고 힘들게 활동해왔다. 2월 4일에는 부당노동행위 사업장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대표들과 국민회의 당사에 농성을 시작하면서 피로가 극심하게 누적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두통과 가벼운 얼굴마비, 그리고 시력장애가 나타났으나, 그 뒤에도 2월 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준비하고, 2월 10일, 11일에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점검하기 위해 쉴틈도 없이 근무해왔다. 그러다가 11일 오후에는 두통과 눈 증세가 악화되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되자 안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13일여간 뇌사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던 동지는 결국 2월 24일 오후 1시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3년 11월 10일 충북 음성 출생 1985년 2월 이화여대 행정학과 졸업 1985년 인천 태성전자, 인우전기, 한미실업 등 에 입사 1986년 인천 그로리아가구 입사 1989년 그로리아 가구 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 활동, 화재로 인한 인원감축 때 집단해고 됨 1989년∼1995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교육부장, 조직부장 등으로 활동 1995년 12월 민주노총 조직국 조직1부장으로 활동 1998년 2월 11일 진료차 서울대 병원에 갔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짐 2월 24일 오후 1시경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최성근 사진
  • 이름: 최성근
  • 당시 나이: 38
  • 최성근 동지는 남달리 학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교육자였다. 교육운동가로서 동지의 활동은 87년 6월 민주화투쟁에서 역동적인 민중의 힘을 직접 체험한 뒤 91년 전교조 대의원으로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89년 이른바 '교육대학살의 해'에는 전교조 탈퇴각서의 파문을 딛고 많은 해직교사의 참교육의 염원을 가슴에 품은 채 계성여상에서 인사위 투쟁, 예결산 요구투쟁, 서명 투쟁을 통해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다. 91년 동지는 평소 동지의 활동을 달가워 하지 않던 학교재단의 부당한 인사행정으로 인해 대동고등학교로 전출해야 했다. 대동고에서 동지는 학교와 지회활동에 보다 정열적으로 힘을 쏟으며 학생안전공제회, 보충수업비, 5월 서명투쟁을 주도하고 서부지부에서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 쉼 없던 교육민주화의 삶에 병마(간암)가 찾아왔고 많은 동지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한채 92년 12월 13일 숨을 거두었다.
  • [프로필]
    1955년 경남 마산 출생 1986년 부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1986년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1988년 부산 평교사협의회 참가로 참교육운동 시작 1990년 전교조 부산지부 사립지회 동래 지구장 1991년 대동고등학교 전출 1991년 전교조 대의원, 사립지회 서구지구 대의원 1992년 12월 13일 간암으로 운명
최성묵 사진
  • 이름: 최성묵
  • 당시 나이: 49
  • 서울여객, 성호여객 등에서 최성묵 동지는 노동조합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기사들의 억울한 상황과 회사측의 부당행위를 시정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던 1994년 성호여객 노동조합위원장 선거 중 회사는 선거당시 선거 대책본부에서 활동하던 11명을 면직하거나 사표를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부당해고와 근로조건에 항의하러 간 최성묵 동지는 회사 전무와 동반분신,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45년 11월 14일 안성에서 출생 1969년 양성중학교 입학, 평화버스에 입사 1985년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농성 참가 1986년 평택 시외버스인 서울여객입사, 노동조합대의원으로 활동 1990년 성호여객입사, 노동조합대의원, 노사의원, 상집위원 활동 1994년 3월 11일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 운명
최성조 사진
  • 이름: 최성조
  • 당시 나이: 0
  • 100여일간의 투쟁을 전개하던 남성 흥진은 회사측이 협상을 회피하면서 정상운행을 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구사대를 동원하여 공공연히 배차를 하고 시비를 걸어와 톱과 칼을 들고 위협하였다. 이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5월 2일 총파업이 시작되자 회사측은 구사대를 구성하여 조합사무실을 난입, 폭력으로 점거하여 노동조합간부들에게 시비를 걸며 소등을 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동지는 회사 건물 전등을 켜라고 항의했으나 구사대는 각목과 쇠파이프로 동지를 무차별 폭행하여, 2차례의 뇌수술을 받았으나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89년 7월 13일 남성 홍진 노동자로 '무노동무임금 분쇄 결의대회' 참가로 불구속 1989년 8월 2일 구사대 폭력으로 구타당하여 실신, 2차례 뇌수술 1989년 8월 5일 오후 10시 40분 운명.
최완용 사진
  • 이름: 최완용
  • 당시 나이: 25
  • 최완용 동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의 어린 나이에 정든 부모님 곁을 떠나 저임금과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속에서 일을 하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일이면 산업재활원을 방문하여 고통당하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회사에서는 남달리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다. 그러던 중 1989년 3월 1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안전장치도 없는 프레스에서 작업하다 오른손이 잘렸다. 동지는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병원 산업재활원에서 재활 기술을 배우기를 희망하였으나 회사와 병원의 거부로 그것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내가 죽으면 중앙병원 영안실에 안치해 달라'며, 산재 노동자의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온몸에 불을 붙여 산화해 갔다. 동지는 산재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영리에만 치우쳐 노동자의 생명과 생존권을 말살하는 자본가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숨진 것이다.
  • [프로필]
    1964년 11월 2일 충남 천원 출생 1983년 인천에서 공장생활 1987년 산업재활원 방문, 환자들을 위로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재해자들과 삶을 같이함 1989년 계양구 박촌동 소재 흥업사에서 손가락 4개가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함 1989년 4월 9일 부평 철마산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열망하며 분신
최웅 사진
  • 이름: 최웅
  • 당시 나이: 29
  • 최웅 동지는 87년 경동산업에 입사하여, 풍물패 활동과 민주파 모임인 디딤돌의 열성적인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89년 봄, 동지의 활동을 주목하기 시작한 회사측에 의해 해고되었고, 이후 90년초까지 인천지역해고자협의회 실무자로 근무하며 복직투쟁을 전개하였다. 90년초 인천민중교육연구소와 92년 인천민중연합 상담실 실무자로 근무하였으며 전두환 정권 때부터 계속해온 병역징집 거부투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 방문조차도 커다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동지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2년여 가까이 새벽에 아파트 자동차 세차를 해오고 있었으며 일주일에 3번 정도 중학생 과외지도를 하는 등 참으로 억척스러운 생활을 꾸려나갔다. 처가의 완강한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며 노동자의 삶을 결의하던 10월 26일,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불의의 조난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 [프로필]
    1964년 5월 1일 강원도 강릉 출생 1983년 강릉고등학교 졸업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입학. 동아리 '탈' 연구회 가입 활동 1986년 노동운동을 위해 인천으로 이전 1987년 경동산업 입사 풍물패 활동 및 디딤돌 소모임 활동 1989년 경동산업 해고 인해협에서 간사로 활동 1990년 인천민중교육연구소 실무간사로 근무 1992년 인천민중연합 노동자위원회 활동 1993년 인천민중연합 부설 '우리' 노동상담실 노사부장으로 근무 1993년 10월 26일 신혼여행 중 사고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최윤범 사진
  • 이름: 최윤범
  • 당시 나이: 28
  • 고려피혁 성남공장은 200여 노동자가 슈발리에 구두를 생산하는 대우계열 중소기업으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이상 노동자가 자본가의 노예일 수 없다고 생각한 최윤범동지를 중심으로 민주노동조합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본조의 공작에 의해 성남공장은 지부가 되었고, 지부장 선거과정에서 회사측과 어용노동조합 측에 의해 민주노동조합측이 패배하자 회사는 민주노동조합에 대해 탄압을 시작했다. 부서이동과 해고가 자행되고, 이에 반대하며 농성에 돌입하자 회사측과 어용노동조합 측은 민주노동조합 측을 회사 밖으로 밀어냈고 민주노동조합측은 회사밖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농성 3일째, 노동부가 중재를 한다며 회사측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회사측은 그사이 물품을 빼돌리려 했고, 이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지는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산화하였다.
  • [프로필]
    1960년 서울 출생 1976년 9월 서울 장충중학교 졸업. 잉글랜드사, 에펠사, 시엔나사에서 근무 1988년 2월 26일 고려 피혁 노조위원장 선출 1988년 4월 24일 해고 징계에 맞서 작업거부 철야농성 1988년 4월 25일 관리자들과 몸싸움 중 분신 1988년 4월 30일 한강성심병원에서 1시경 운명 용인 가톨릭 묘지에 안장
최태욱 사진
  • 이름: 최태욱
  • 당시 나이: 0
  • 90년 5월 30일 노동조합 위원장과 함께 조합원 14명을 회사측은 노동자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야간 근무조를 조합원으로만 편성하여 근무를 지시하였으며,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 퇴근해 버리자 징계위원회에 최태욱 동지를 회부하여 해고하였다. 이러한 회사측의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던 동지는 90년 7월 8일 오후 6시경,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신나를 끼얹고 분신을 기도, 신음 중인 것을 신부가 발견하여 곧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90년 5월 9일 해고 1990년 5월 14일 원직 복직 1990년 5월 30일 재차 해고 1990년 7월 8일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분신 1990년 7월 14일 투병 중 운명 경남 남천면 장미공원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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