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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철 사진
  • 이름: 강상철
  • 당시 나이: 22
  • 강상철 동지는 1964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해 1986년 목포역 광장에서 분신하였다. 동지는 80년 5월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의 비정함이 정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으며 각 민주단체의 각성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삼민(민주, 민족, 민중)주의를 좌경, 용공으로 모는 전두환 및 5·18 쿠데타 주동자를 몰아내고 민주인사 사면복권 및 석방과 직선제 개헌단행을 촉구했으며, "정의로운 죽음은 의로운 죽음이요, 승리의 죽임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전 민중의 함성이며, 동참이며, 투쟁의 길이며, 승리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라고 확신하며 장렬히 산화하였다.
  • [프로필]
    1964년 3월 24일 전라남도 해남 출생 1986년 목포전문대학교 재학 중 미등록 제적 목포 사회운동 청년연합 사무차장 역임 목포 평강교회 청년회 총무 1986년 6월 6일 목포역 광장에서 민주화운동 탄압 중지와 5·18 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선언을 외치며 분신 1986년 6월 26일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고정희 사진
  • 이름: 고정희
  • 당시 나이: 28
  • 1988년 1월 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백악관, 독일대사관 등에 '노태우 부정집권'을 고발하는 투서를 한 고정희 동지는 88년 3월 경찰에 연행되어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서 조사를 받다가 강남 성모병원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된 뒤, 5월 13일 오후 5시 40분경에 병원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 병원측의 주장에 따르면 고씨는 사건 당일 10층 정신병동 정문을 통해 나와 비상계단을 이용해 9층으로 내려간 뒤 공사 중인 신축공사장 베니어판(구멍)을 뚫고 나가 투신, 2층 구름다리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과 증언들에 의하면 병실안에서 인권위원회, 대사관 등에 탄원서를 쓰는 등 처참하게 몸부림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 [프로필]
    1960년 12월 4일 전남 광주 출생 1979년 3월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 입학 1986년 1월 졸업후 IBM입사 (호주 파견근무) 1987년 3월 퇴사 후 연세대학교 정외과 편입학 1987년 10월∼12월 민족통일 애국 청년단 중앙본부 기획위원회에서 활동 1988년 1월 청와대, 미대사관, 각 언론기관에 부정선거에 관한 투서 및 미대사관에 투석 계획 1988년 3월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 연행 후 정신병원에 강제수용 1988년 5월 1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투신자살로 발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기설 사진
  • 이름: 김기설
  • 당시 나이: 26
  • 동지는 1988년 9월 성남민청련 창립대회에서 강연을 듣고 즉석에서 성남민청련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성남민청련 노동분과 소속, 지역 노동운동 단체들을 지원 연대하는 사업에 열의를 갖고 참여하다 민청련이 해체되면서 성남노동자의 집에서 교육상담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동지는 노동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조광피혁 등에 입사했으나 성남 민청련에서의 활동이 드러나 쫓겨나곤 하였다. 91년 1월부터 전민련에서 사회부장으로 일하게 되어 활동하면서 노태우정권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민족적 폭압을 새삼 인식하였으며, 강경대 동지의 죽음 이후 범국민 대책회의에 참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던 중 분신을 결행하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여러 사람을 불법연행하여 강압수사를 벌여 유서대필이라는 상식이하의 조작으로 동지를 두 번 죽이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 [프로필]
    1965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83년 인천 수도전기통신고 중퇴 1984년 대입검정고시 합격 1988년 성남 민주화청년운동연합 가입 1989년 성남 노동자의 집에서 상담간사로 활동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본부 사회부장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폭력살인 만행 노태우정권 타도하자" 고 외치며 분신한 후 투신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길호 사진
  • 이름: 김길호
  • 당시 나이: 34
  • 김길호 동지는 80년 광주항쟁 이후 기독교 농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특히 86년 7월 4일부터 87년까지 무안에서 지속된 '농산물(마늘, 양파) 제값받기 투쟁'에서 선봉대로서 열심히 투쟁에 참가하였다. 87년 12월 20일. 무안에서의 대통령선거 무효투쟁시 오후 5시경 무안읍에서 광주 방면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논두렁에 동지를 처박고 집단구타하였다.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5일간의 구류를 살았고, 구타로 인한 후유증으로 무안읍 유성병원을 거쳐 목포 성 콜롬반 병원으로 옮겼으나 계속 악화되어 88년 3월18일 광주 기독병원에 입원, 결국 회생을 하지 못하고 3월 25일 "나는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끝으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54년 1월 18일 전남 무안 출생 목포 중학교 졸업 부산, 서울 등에서 장사를 했으나 실패 1977년 귀향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참여 이후 기독교 농민회 회원으로 활동 1986년∼87년 7월 4일 마늘, 양파, 생산비 보장 및 전량수매 촉구대회 때 선봉에서 활약 1987년 12월 20일 부정선거 규탄 및 선거무효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무안경찰에 잡혀 집단구타 당함 1987년 12월 24일 구류 5일을 살고 풀려나옴, 통원치료 1988년 3월 15일∼25일 광주기독병원 입원 1988년 3월 25일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끝내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남주 사진
  • 이름: 김남주
  • 당시 나이: 48
  • 우리에게 8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남겨져 있는 김남주 시인은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입시위주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를 하고 대학 입학 후에도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제적되고, 고향 해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써 등단했다. 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80년대를 감옥에서 보내면서 우유갑이나, 밑씻개용 휴지 등에 쓴 시들을 묶은 시집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등을 통해 그 시대의 폭압적 현실의 한복판을 날카롭게 꿰뚫는 시를 발표했다. 88년 12월 석방된 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및 한국민족 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아왔던 동지는 민족민중운동의 대동단결을 호소하며 오랜 감옥생활과 석방뒤의 과로 등이 겹쳐 얻은 췌장암으로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1964년 광주일고 입학 후 자퇴 1969년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 참여 1973년 반유신투쟁을 전개하다 투옥, 제적 1978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가입 1979년 '남민전' 조직원으로 활동 중 체포, 구속 1984년 첫시집 "진혼곡" 출간 1988년 9년 3개월만에 석방 1994년 2월 13일 새벽 췌장암으로 투병중 운명 1994년 2월 16일 민족시인 故 김남주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장례식 치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말룡 사진
  • 이름: 김말룡
  • 당시 나이: 69
  • 한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하였던 김말룡 동지는 당시 69세로 매우 건강한 체질로 노익장을 과시했는데, 1996년 10월 3일 워커힐 뒤 아차산을 조카와 함께 등반하던 도중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풍납동 소재 서울중앙병원으로 급송하였으나, 같은 날 오후 5시 30분경 끝내 숨을 거두었다. 동지는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새벽 세시에도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으며 운명하기 전날인 10월 2일에는 민주노총 투쟁본부 회의에서 밤10시까지 각 단사 위원장들과 함께 노동법 개정문제와 관련한 회의를 갖기도 하였다.
  • [프로필]
    1927년 2월 2일 출생 1945년 11월 조선기계제작소 노조 선전부장 1946년 8월 노사분쟁사건 관련, 구속 1954년 3월 이승만 대통령 유시위반사건 관련 수배 1956년 10월 노총 자유당 기관단체 탈퇴운동 주도 1961년 7월 박정희 대통령 비난사건 관련 구속 1980년 5월 5·18 사건 관련 구속 1992년 4월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1996년 10월 3일 오후 5시30분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병곤 사진
  • 이름: 김병곤
  • 당시 나이: 37
  • 김병곤 동지는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사건으로 군사법정에서 이철, 유인태, 김지하 등과 함께 21세의 가장 어린 나이로 구속되어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최후진술 첫마디에서 사형이 구형된 것에 대해 '영광입니다' 라고 외침으로써 많은 감동을 주었다. 1987년 12월 구로구청사건으로 구속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 건강에 이상을 느껴 교도소와의 싸움 끝에 외래진료를 받았으나 진행성 위암 3기로 판명되어 88, 89년 두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1990년 12월 6일 오랜 투병생활 끝에 그토록 바라던 민주세상을 보지 못한 채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71년 2월 부산고등학교 졸업 1971년 3월 서울대학교 상대 입학 1973년 유신반대 시위로 첫 구속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가입 1985년 민민투사건으로 구속 1987년 구로구청 사건으로 구속 (투쟁지도부 상황실장) 1990년 12월 6월 위궤양 및 위암 3기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병구 사진
  • 이름: 김병구
  • 당시 나이: 35
  • 8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선거부정을 확신하던 김병주 동지는 이에 대한 추적조사를 통해 전면적인 조작선거였음을 발견하였다. 선거구와 투표구별로 퍼센트를 안배할 때 전면 조작하였고 투표함을 바꿔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지역감정과 민족분할을 꾀해 지배체제의 기득권과 정권 유지를 위해 민족에 대한 죄악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였음을 폭로하고 88년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가족과 학생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였다. 이로 인해 병상에서 투병하다 90년 9월 2일에 자결하였다.
  • [프로필]
    1955년 1월 21일 전남 장성 출생 1971년 5월 독학으로 검정고시 준비 1975년-76년 삼영산업(주) 근무 1980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 개헌 투쟁참여 1987년 6월 항쟁 참여 1988년 10월 18일 제13대 대선 및 총선 부정 고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투신 1990년 9월 2일 병상 생활 중 자결하여 운명
김상원 사진
  • 이름: 김상원
  • 당시 나이: 33
  • 동지는 1986년 3월 10일 저녁 영등포 우체국 앞에서 검문에 항변했다는 이유로 영등포경찰서 직할 중앙파출소에 끌려갔다. 경찰들의 무차별 구타로 앞이빨 6대가 부러지고 두부 좌측 피하혈종에 비강내출혈, 좌측 안검부종에 뇌좌상 등 온몸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식물인간이 된 채 영등포경찰서에 의해 영등포 시립병원에 행려환자로 위장, 입원되어 철저하고도 조직적인 은폐 아래 중환자실에서 77일간을 신음하다 5월 26일 사망하였다. 동지의 가족들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건의 목격자들을 찾아냈고, 집단 구타와 폭행으로 사망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후 동지의 가족들은 사건을 은폐조작으로 미궁에 빠뜨리려는 경찰에 맞서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항의농성, 진정, 법정투쟁으로 5년여만에 법정에서 경찰에 의한 폭행사실을 밝혀내고 민사소송에서도 승리하였다. 이 사건은 의문의 죽음이 최초로 해결된 경우로 기록될 것이다.
  • [프로필]
    1957년 5월 17일 출생 1986년 3월 10일 영등포에서 불신검문에 항의하다가 연행됨 1986년 5월 26일 식물인간으로 투병생활 중 운명 1990년 12월 민사소송에서 경찰의 유죄가 인정됨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선호 사진
  • 이름: 김선호
  • 당시 나이: 31
  • 92년 10월 26일 오후 1시경 부산시 사하구 장림지역은 처음으로 강제철거를 맞게 되었다. 100여명의 철거반원과 중장비를 동원한 그들은 무력으로 몰아붙였으나 이를 저지하기 위해 주민들과 김선호 동지는 LPG가스 배출로 위협하였고, 부상당한 부녀자의 몸부림으로 강제철거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집을 지켜냈다는 기쁨도 잠시, 11월 3일 오전 대대적인 강제철거가 다시 감행되었다. 공권력이 투입되어 철거깡패를 돕는 상황이었고 주민들이 함부로 다루어지고 이리저리 끌리며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동지는 참다못해 그들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집단구타로 운명하게 되었다.
  • [프로필]
    1961년 7월 전남 여천 출생 1991년 12월 부산시 장림1동 철거대책위 교육부장 역임 1992년 10월 총무 역임 1992년 11월 3일 "끝까지 투쟁하여 주거권을 쟁취하자" 라고 외치며 철거에 맞서 싸우다 철거깡패의 집단구타로 운명 부산 팔송 시립공원묘지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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