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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 사진
  • 이름: 강민호
  • 당시 나이: 24
  • 한신대학 시절 강민호 동지는 모범적인 생활 태도를 견지하여 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왔다. 동지는 이 땅의 구체적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서 왔으며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사건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투쟁하다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동지는 노동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대학졸업장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삶을 자기의 삶으로서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동지가 다니던 공장은 약15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붕전선이라는 회사로서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제로서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동지는 입사한지 7일째 되던 날 야간 작업을 하다가 연신기 주위에 있는 폐선을 치우기 위하여 1.5미터 되는 연신기 기계 사이의 통로를 지나다가 메고 있던 폐선이 회전하는 연신기에 휘말리면서 몸도 따라 들어가 비명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66년 2월 16일 전북 출생 1981년 2월 도봉중학교 졸업 1984년 동성고등학교 졸업 1985년 3월 한신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1986년 10월 건국대 애학투련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 1987년 12월 구로구청 부정개표 사건으로 2년 선고 1988년 10월 특별사면으로 석방, 복학 1990년 3월 28일 대붕전선 입사 1990년 4월 4일 야간작업 중 기계에 휘말려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강현중 사진
  • 이름: 강현중
  • 당시 나이: 26
  • 89년 9월 4일 인천 주안5공단에 소재한 경동산업에서 노동자 5명이 집단 분신 할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 산재, 노동조합집행부의 어용성, 대량해고 등 노동자들의 탄압에 전형적인 모습을 가진 경동산업은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조합의 민주화를 위해 조합원들로 구성된 친목단체 '디딤돌' 회원들이 8월 투쟁 2주년을 기념하고 9월 대의원 선거에 앞서 단결을 모도하기 위하여 일일 찻집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노동자들을 징계에 회부하였다. 21명이 복지관 4층 옥상에서 농성투쟁에 들어갔으나 회사측은 구사대를 동원하여 농성 노동자들을 고립시켰으며, 지원나온 가족들과 해고 노동자들을 실신할 정도로 집단 폭행하는 등 사태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종 협상을 위해 노무이사와 담판을 하러 갔으나 '징계를 받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는 식으로 노동자들을 격분시켰고, 급기야 동지들은 분신, 할복하게 된 것이다.
  • [프로필]
    1963년 4월 27일 충북 음성 출생 1981년 10월 5일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중퇴 1987년 12월 5일 경동산업 입사 1988년 5월 4일 <디딤돌>이라는 친목회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활동 1989년 8월 31일 ∼ 9월 4일 회사의 부당징계조치에 항의농성 1989년 9월 4일 노무이사와의 담판이 결렬되자, 노무이사에게 신나를 끼얹고 함께 분신, 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 "노동자는 승리합니다"라고 절규 1989년 9월 9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운명 부여 선산에 안장
고정자 사진
  • 이름: 고정자
  • 당시 나이: 0
  • 고정자 동지는 78년 입사하여 일하던 중 팔다리가 마비되고 우울증, 성격변화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매년 특수건강검진 결과 정상 판정이었다가, 91년 원진레이온 전·현직 노동자 1500명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한가지만 직업병으로 발견되었다. 의학적으로는 직업병이었고 법률적으로는 정상으로 판정되어 1년간 방치되는 과정에서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직업병 증세인 정신분열로 자살하게 되었다. 운명 2일 후 노동부는 이를 직업병으로 인정치 않음으로서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 [프로필]
    1978년 원진레이온 입사 후 처리 정련과에서 15년간 근무 1991년 직업병 증세 발견 1993년 5월 21일 직업병에 의한 정신분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권미경 사진
  • 이름: 권미경
  • 당시 나이: 22
  • 지역 노동자들의 독서모임인 '도서원 광장'에 나가면서 노동자의 의식에 눈을 떴고, 자랑스런 노동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권미경 동지는 신발업체인 대봉에서 91년 11월부터 어용노동조합의 협조 속에서 30분 일 더하기 운동, 구사운동과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노동통제강화에 맞서 공장 옥상에서 투신,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다음은 팔뚝에 쓴 유서 전문이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땅에 묻지 않고 그대들 가슴 속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미경이다."
  • [프로필]
    1969년 전북 장수 출생 1982년 2월 부산 아미 초등학교 졸업 보세공장 취업으로 노동자생활 시작함 1985년 공장생활을 하면서 동주여자중학교 야간 졸업 1990년 (주)대봉에서 미싱공으로 근무 1991년 12월 6일 (주)대봉 3층 옥상에서 살인적인 노동문제에 항거하여 투신 양산 솥발산 공원 묘역에 안장
김경숙 사진
  • 이름: 김경숙
  • 당시 나이: 21
  • 김경숙 동지가 근무하던 YH무역은 수십 억의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폐업을 자행하는 회사였다. 이러한 YH무역의 폐업에 맞선 노동자들은 신민당사 농성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독재를 등에 업고 가혹한 탄압을 진행하는 공권력의 위협은 동지를 투신하게까지 만든다. "몸은 비록 병들었지만 마음은 상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라는 동지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YH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들이 본디 강인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지키기 위해 착취당해 왔던 소극성을 버리고 과감히 일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YH 노동조합의 투쟁은 민주노동조합을 파괴하는 악덕자본가와 이를 비호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보여준 역사적인 투쟁이었으며, 결국 이 사건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18년에 걸친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 [프로필]
    1958년 6월 5일 전라도 광산군 출생 1973년 서울로 상경, 한품섬유, 태진산업, 이천물산 등을 전전 1976년 8월 30일 YH무역(주) 입사 1977년 6월 녹지야학 입학 1978년 3월 YH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선출 1979년 3월 30일 YH무역(주) 일방적 폐업공고 발표로 YH 사건 시발 4월 13일 YH 노조 폐업철회 공장점거 농성 5월 YH노동조합 조직부 차장으로 피선 8월 9일 신민당 당사 점거 농성 8월 11일 새벽 2시 2천여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 강제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동맥끊고 투신, 운명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낙성 사진
  • 이름: 김낙성
  • 당시 나이: 39
  • 김낙성 동지는 미아전화국 창동분국 시절 기독교 신우회 활동 등을 통한 성실함으로 조합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91년 4월의 대의원 선거에서 어용지부장을 제치고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동지는 자신을 택해준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주지않기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해나갔다. 동지는 이후 91년에 어용노동조합의 부당간섭에 항의하는 등 농성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하게 되었다. 동지는 어려울 때 노동조합 민주화추진위원회를 확대, 강화하여 투쟁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일으켜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93, 94년에는 노동조합을 해산하고 여용산별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공작을 펴는가 하면, 위원장, 지부장 임기를 3년 연장하는 등의 한국통신 노사 양측의 반민주적 음모에 맞서 모든 정신과 육체를 민주노동조합 사수에 바쳤다.
  • [프로필]
    1955년 12월 3일 충북 음성 출생 1975년 12월 19일 용산공업고등학교 통신과 졸업 1991년 5월 한국통신노동조합 개혁모임에 참가 1992년 4월 서울지방본부 대의원 피선 1992년 5월 민주개혁그룹 대의원 다수 확보 활동 1992년 7월 서울지역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1993년 3월 조합집행부의 징계기도에 맞서 저지 투쟁 전개 1993년 11월 전국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1993년 12월 복지후퇴 및 직선제 사수 투쟁위원회 결성 1994년 4월 17일 백혈병으로 운명 금촌 기독공원묘지에 안장
김봉환 사진
  • 이름: 김봉환
  • 당시 나이: 53
  • 김봉환 동지는 77년 원진레이온에 입사하여 성실한 노동자로 일했으나 입사 후 차츰 몸이 쇠약해지더니 급기야 CS2 중독 초기 증상인 두통과 소화불량, 손발이 저리는 등의 증상으로 83년 원진레이온에서 퇴사하였다. 그후 건물 경비 등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던 중 두통, 마비증세에 시달리다 89년에 쓰러져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하여 90년 10월 진료를 받아본 결과 "이황화탄소 중독의증 및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자기의 병이 직업병임을 안 동지는 원진레이온 회사측에 산재요양을 요구하게 되었으나, 진단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요양신청을 해줄 수 없다고 거절했고, 노동부 또한 회사를 두둔하며 접수조차 거부하였다.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인 싸움으로 마침내 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를 접수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바로 그 날 운명하였다.
  • [프로필]
    1938년 12월 11일 출생 1977년 12월 22일 원진레이온 입사 (원액2과 근무) 1990년 9월 퇴사 후 쓰러져 말을 더듬기 시작 1990년 11월 26일 사당의원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및 고혈압 진단받음 1990년 11월 27일 노동부와 회사 측 요양신청 거부 19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 접수 통보받음 1991년 1월 5일 오후 1시경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밤 10시 30분경에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상옥 사진
  • 이름: 김상옥
  • 당시 나이: 33
  • 김상옥 동지는 80년 서강대 문과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4학년에 들어설 무렵 군입대를 하루 앞둔 3월 24일 시위 주도로 구속되었고, 83년 12월 출소한 김상옥 동지는 노동운동을 고민하게 된다. 첫 발을 들여놓은 곳은 농약을 포장하는 회사였고, 지독한 농약냄새를 마셔가며 처음으로 힘든 노동을 하게 되지만 동지는 즐겁게 생활했으며, 우연히 구로공단 내 선진적인 남성노동자들을 양성하는 조직, '대나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동일기업에 입사하여 노동조합설립을 위해 싸우다 공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되어 두 번째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다. 석방된 뒤 한국민주노동자연합, 남부지역금속노동조합에 참여하였고 다시 철공장에 취업하였으나 작업 중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후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서강대 민주동문회에서 활동하였으나 위암으로 인해 운명하고 말았다.
  • [프로필]
    1961년 1월 7일 서울 출생 1980년 서강대학교 문과대 입학 1983년 민주화시위 주도로 구속 1984년 노동현장에서 일함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대중모임 '대나무' 활동 1986년 구로 동일기업 노조설립 투쟁으로 구속 1988년 한국민주노동자연합 편집위원 1990년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노동분과 국제분과 연구원 1991년 서강대학교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1992년-93년 한국민주노동자연합 홍보부장 1994년 2월 19일 위암으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성애 사진
  • 이름: 김성애
  • 당시 나이: 18
  • 김성애 동지는 86년 9월12일 진흥요업(인천 주안동)에서 작업을 하던 중 작업장내의 인체에 해로운 화공약품에 의식을 잃고 기절하여 뇌진탕으로 반신불구가 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측에서는 보상은 커녕 동지의 모친과 외숙을 불러놓고 동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며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하였고, 가족을 협박하여 산재처리를 해줄테니 추후 어떤 법적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한 뒤 도장을 찍게 하였다. 이렇게 회사측으로부터 고통을 받던 동지는 인천 산업재활원에 입원 중 87년 11월3일 오후 4시10분경 병원 7층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투신, 자살하였다. 김성애 동지는 꽃다운 18세의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 [프로필]
    1986년 9월 12일 진흥요업에서 작업 중 화공약품에 의식을 잃고 반신불수 1987년 11월 3일 산재 중앙병원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투신, 운명 부평공원묘지에 안장
김성윤 사진
  • 이름: 김성윤
  • 당시 나이: 62
  • '잘못된 택시제도의 개선'을 외치며 운명한 김성윤 동지는 질곡의 삶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15만 택시노동자들 모두의 죽음이었다. 동지는 14년간이나 상호운수에 근무하면서 단 한 번의 무단결근도 하지 않은 성실한 택시노동자로 동료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으며, 보증금 1천만원에 월 45만원의 사글세방에 살면서도 딸을 대학원에 보낼 정도로 헌신적인 가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평범한 노동자이자, 가장 열심히 살아왔던 노동자는 말뿐이고 변하지 않는 정권의 택시정책에 분노하며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를 작성하고 자결, 운명하고 말았다.
  • [프로필]
    193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출생 1971년 택시업계에 입사 1980년 7월 상호운수주식회사 입사 1986년 12월∼1992년 12월 상호운수노동조합 선거관리위원장과 고문 역임 1994년 1월 오전 5시 잘못된 택시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를 작성하고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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