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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혁명

작성자 민주공원 작성일 2026-08-06 조회수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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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명선거 실시하고 민주주의 실현하자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막아선 경찰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막아선 경찰들
1960.4.19.
생산·기증 손기태,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60년 3월 15일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일이었습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장기 집권을 이어오던 이승만은 온갖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했고, 이승만과 자유당은 대통령과 부통령(이기붕) 자리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이러한 불법 선거 결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미 2월 28일 대구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 저항의 불길은 전국으로 확산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피의 화요일’이라고도 불리는 4월 19일에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승만 ‘독재’ 정권의 퇴진을 외쳤습니다.


서면 거리를 메운 학생과 시민들 시위에 참여한 부산지역 학생들
서면 거리를 메운 학생과 시민들
1960.4.19.
생산·기증 손기태,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위에 참여한 부산지역 학생들
1960.4.19.
생산·기증 손기태,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산에서도 서면, 부산진경찰서, 자성대, 범일동 등에서 학생과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무차별 실탄 사격을 가해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시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으며, 결국 부패한 독재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4월 26일, 이승만은 대통령직 하야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후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로써 허정 과도정부에 정권이 넘겨지며, 이승만 정권은 11년 8개월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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