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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예술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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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3 조회수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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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예술가로 살기

-나는 예술가입니다.


미국의 흑인 조각가 에드모니아 루이스(Edmonia Lewis, 1845~1911년경)는 자신의 조각 작품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북미 유색인종 미술가로서, 치퍼와족 인디언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오벌린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대학교는 1835년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입학을 허용한 사립 인문대학이었다. 루이스는 1860년대에 로마로 가서 다른 망명 미술가 및 작가들과 합류했다.

루이스는 조각가 애드워드 프래킷에게 받은 간단한 공식적인 조각훈련 말고는 평생 동안 다른 조각가의 지도나 비평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루이스는 여성이라는 젠더와 혼혈이라는 인종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다른 이의 것이라는 혐의를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864년에 비슷한 비난들이 쏟아지자, 루이스는 호스머에게서 배운 자신의 작업방식을 공적으로 변호해야 했다. 남성 예술가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여성 예술가에게는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16세기 틴토레토의 딸 로부스티의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 로부스티의 작품은 그녀의 아버지 틴토레토의 작품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거의 모든 작품이 틴토레토에게 귀속되었다. 왜냐하면 르네상스 시대 공방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설령 이해했더라도 틴토레토라는 거장과 비슷하게 그의 딸 로부스티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인정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로부스티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는데, 이것은 여성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지속적이어서 그녀들이 예술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루이스는 처음에 개리슨, 존 브라운, 찰스 섬너, 웬들 필립스와 로버트 굴드 쇼 대령 같은 노예제도 폐지론의 지도자들 및 남북전쟁 영웅들의 흉상과 큰 메달을 제작했다. 루이스는 보스턴에 있는 백인 자유공동체에서 성장했는데 이런 성장배경이 백인후원자의 관점에서 볼 때 루이스의 타고난 특질, 즉 유색인종이라는 것이 그녀의 예술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1863년에 루이스는 ‘유색인종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칭찬해서는 안 된다고 요청해야만 했다. 그러나 보스턴의 미술단체는 진정한 후원과, 선의이긴 하지만 잘못 베푼 은혜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했다. 예를 들면 사회개혁가인 리디아 마리아 차일드는 재정적인 후원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루이스가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시도하지 못하도록 용기를 꺾기도 했다. 아마도 루이스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루이스는 여자였고 게다가 흑인이었기 때문에 후원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예술적 재능에 대한 진정한 후원과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지원한다고 하는 그래서 ‘은혜’를 베푼다는 생각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루이스는 남북전쟁 때 제1흑인연대의 연대장이었던 로버트 굴드 쇼의 석고 초상을 성공적으로 제작함으로써, 로마 여행을 위한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1865~1866년의 겨울에 로마에서 자리를 잡은 루이스는 대리석으로 조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방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기 민족의 억압과 직접 관련된 이미지와 주제를 상당히 자연주의적으로 형상화해 냈다. 로마에서 전문 여성 조각가 집단의 존재는 비평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었지만, 루이스는 혼혈이라는 태생으로 인해 더욱더 이색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내가 잘못 이해하지 않은 한, 그 여성들 중 한 명은 흑인이었다. 석고 색과 완전히 대조되는 피부색은 그녀의 명성을 깎아 내리는 요인이었다.


이는 헨리 제임스가 조각가 윌리엄 웨트모어 스토리의 전기에서 루이스를 경멸적으로 평가한 말이다.

이러한 경멸적인 평가와 더불어 여성 미술가이기 때문에 혹은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받아야하는 차별은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혐의를 받는 것이었다. 따라서 루이스는 자신의 작업을 대부분 혼자 해야만 했다. 이탈리아에 머물던 대부분의 외국 조각가들은 찰흙이나 왁스 모형을 대리석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현지 장인들을 고용했지만, 루이스는 한동안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하기를 고집했다. 정기간행물 ??혁명??의 편집장이자 여성참정권론자인 로라 커티스 불러드는 루이스가 손수 작업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비난받을 여지를 남기지 않기로 굳게 다짐한 그녀는 심지어 찰흙을 ‘쌓는’ 일조차 직접 했다. 어떤 남성 조각가도 좀처럼 혼자서는 하지 않는 일을 말이다.” 그러나 “비난받을

여지를 남기지 않기로” 결심한 루이스는 또한 유별날 정도로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했다. 루이스는 작품 의뢰를 받기도 전에 종종 대리석을 조각해서 대금을 청구하기도 했고, 보스턴의 후원자에게 작품의 재료비와 운송료를 위한 후원금을 올려 달라는 요청과 함께 의뢰받지도 않은 작품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또한 작품을 팔기 위해 몇 톤이나 되는 작품을 가지고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린다 하티건에 따르면, 전문 미술계의 관습에 무관심했던 그녀의 태도는 “자신의 혈통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시도였거나, 아니면 젊은 혈기나 자신의 배경을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시도로 인식되었다.”

루이스는 자신의 백인 지지자들보다 자신을 한층 더 가로막고 있는 인종적?성적 장벽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재능과 모든 원천을 쏟아서 만든 작품이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을 부인할지 모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루이스가 비록 동시대 남성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데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우리는 그녀의 이력을 통해 그녀가 조각가로서 정통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술사 서술에서는 아직 경계에 머물러 있고, 루이스 사후에 그녀의 조각품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시카고의 고철 처리장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루이스의 경우 여성이라는 젠더와 흑인이라는 인종의 문제가 겹쳐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사실 여기서는 여성이라는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으나 인종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배제와 포함이라는 것이 더 명백해진다. 이슬람 세계, 혹은 동양의 예술 또는 아프리카 혹은 남아메리카의 예술, 그 외의 원주민 예술을 서양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아마도 ‘정통 미술사’에서는 그것들을 ‘이국취향’으로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즉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귀한 구경꺼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아마도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인종적 차이 즉,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이라는 이유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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