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동참 거부’와 ‘위원직 사퇴’를 하며
본문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동참 거부’와 ‘위원직 사퇴’를 하며
박근혜 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대한 의지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부마위원회) 2기의 출발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에 대한 이 정부의 의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답이다.
지금 우리는 이 정부의 부마항쟁 진상규명이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년간 부마항쟁 관련단체로서 부마위원회에 진상규명과 보상 작업을 촉구하고 협조해 오면서 확인했던 것은 이 정부의 부마항쟁 진상규명 작업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인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보상 작업은 오히려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들은 더 이상 부마위원회의 진상규명과 보상 작업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1. 박근혜 정부는 집권여당 밀착 인사도 모자라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인사를 2기 위원으로 임명하는가?
부마위원회가 10월 20일 상오11시 2기 위원 임명 및 위촉식을 갖는다. 우리는 우선 2기 부마위원회의 위원 구성에 대해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면서 재고를 강력히 촉구한다.
부마위원회는 2014년 출범부터 정치적 중립성이나 전문성과 거리가 먼 인사들로 구성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집권여당에 밀착된 인사뿐만 아니라 심지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인물들까지 위원으로 임명하는 작태를 보여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런데 새롭게 교체된 2기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도대체 부마위원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분노와 깊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퇴행적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국사교과서 국정화, 친일과 독재의 미화 등 일련의 ‘역사 뒤집기’에 비춰볼 때 2기 부마위원회의 편파적 구성은 부마민주항쟁의 의미를 왜곡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2기 부마위원회는 1기 위원들이 대부분 유임되는 가운데 항쟁 관련단체와 지자체 추천위원 3명이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들로 충원됐는데, 우리는 그 면면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중 두 명은 전력을 볼 때, 정치적 편향성이나 빗나간 역사관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진상규명의 마무리 작업인 <진상규명보고서> 작성을 염두에 둔 인선이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새롭게 위원으로 임명된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싱크넷(뉴라이트) 상임집행위원으로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교학사 역사교과서 지지, 국정교과서 지지에 이름을 올리고, 2006년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해 친일과 독재 미화 논란에 휩싸였던 교과서 포럼의 필진이다. 특히 박근혜 대선캠프에 이름을 올리고 새누리당 100%대한민국통합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정치적 색채가 짙은 인물로 부적격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한 술 더 떠 “민족을 위한 친일”이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등 친일파를 미화하는 데 앞장섰다. 식민시대에 우리가 일제에 피만 빨린 게 아니라 영생을 얻었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드라큘라 영생론’을 주장해 지탄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나마 항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일부 위원 등이 물러나고 이렇듯 편향된 시각의 위원들을 인선한 2기 위원회의 구성은 분명 1기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게 틀림없다. 이러한 인선은 <진상규명보고서>의 향방을 짐작케 하는 것으로, 박근혜 정권의 과거사 왜곡의 검은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우리는 지난 2년 간 지각 출범에다 편향된 인적 구성 등에도 불구하고 부마항쟁의 진상규명이란 대의 아래 부마위원회의 작업에 참여해 왔다. 때로는 독려하거나 촉구하고, 때로는 작업에 협조하는 등 애를 써왔지만 부마위원회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과 보상 작업에 있어 한마디로 수준이하의 행태를 보여 왔다.
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 자료조사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작업을 수행할 전문 인력은 겨우 한 명으로 태부족이었고, 국가기관의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도 손을 놓다시피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수집한 기존의 국가자료 이상 발굴해내지 못했다. 항쟁 당시 정부의 대응을 밝힐 관의 자료나 중앙정보부 자료, 계엄군 관련 자료 등은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항쟁 참가자에 대한 조사 또한 수동적이고 제한적으로 진행했다. 시민과 학생 등에 대한 연행과 수사 과정에서의 가혹행위를 밝힐 연행자 1500여 명에 대한 전수조사 요구는 아예 외면했다.
이러한 소극적 자료조사와 관련자 조사로 부마항쟁 진압과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인권유린, 불법적 병력동원과 지휘체계의 규명, 공권력의 심각한 인권유린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마산시위 사망설과 관련한 유치준 씨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위원회의 소극적 처리로 진상규명에 전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나아가 10.26사태와 항쟁의 연관성 등에 대해서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결국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 결과 세 차례에 걸친 신고접수에 불구하고 175건만 신고 접수됐고, 이 중 관련자 여부를 심의해 의결한 것은 127건에 그치고 있다. 심의 결과도 인용 98건, 일부인용 21건, 기각 8건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보상금과 생활지원금 지급 신청 66건 중에 지급결정된 것은 57건 4억8,000만 원에 불과했다.
3. 부마항쟁진상규명위 동참을 거부하고 위원직 사퇴를 하는 한편, 독자적 진상규명 작업을 통해 부마민주항쟁의 정론적 자리매김을 하겠다.
결론적으로 부마위원회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진상규명 및 보상 작업으로 시한을 앞둔 현재까지 이뤄낸 성과가 거의 없다. 시간만 때우면서 어물쩍 넘기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2기 부마위원회의 지극히 편파적인 구성과 소극적 진상규명 보상 작업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부마위원회 동참과 협조를 일절 거부한다.
또한 관련단체에서 추천하여 부마진상조사실무위원회에 참가한 우리 위원들도 위원직을 사퇴한다.
아울러 부마위원회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 정부의 진상규명 작업의 허구성을 공론화하는 한편, 독자적 진상규명 작업을 통한 <정론적 진상규명보고서> 발행 등을 통해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자리매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2016년 10월 19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부산대학교10·16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실무위원 차성환, 이명곤, 정인권, 진현경
열람중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동참 거부’와 ‘위원직 사퇴’를 하며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 ‘동참 거부’와 ‘위원직 사퇴’를 하며박근혜 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대한 의지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부마위원회) 2기의 출발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해방된 노예-자신의 삶을 기록하다
해방된 노예-자신의 삶을 기록하다박병률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학예실장해리엇 파워스는 1937년 10월 29일 조지아의 시골에서 노예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이후 노예에서 해방된 뒤 1911년까지 살았다.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것을 금지당한 대부분의 노예들처럼…
이인철_반전반핵, 핵우산
이인철_핵우산(Nuclear Umbrella)_ Digital printing on paper_2011이인철_반전반핵_56×40cm_목판채색_1989민중미술 작가 이인철의 1980년대 목판채색 판화가 2000년대 디지털 그래픽 작업으로 바뀌어 가는 20여 년 동안 우리…
부산, 핵관련 문제들의 종합선물 세트 지역
부산, 핵관련 문제들의 종합선물 세트 지역정수희 에너지정의행동 선임활동가“결국 들통 나게 될 거짓말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지난 7월 20일, 국회도서관에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기본계획의 쟁점과 문제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전소 주변 지역주민들의 증언대회가 있었…
작은 장승이 세워졌습니다.
손 재주 좋은 직원들이 작은 장승을 만들었습니다.만들어진 작은 장승은 민주항쟁기념관 서편 쪽 쉬운길 입구에 세웠습니다.기념관 앞마당으로 무단으로 올라오는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도 하고,시민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할 겸해서 제작을 하였습니다.
박영균_86학번 김대리
박영균_86학번 김대리박영균_86학번 김대리_Acrylic on canvas_162×130cm_199686학번 청년학도는 1996년에 김대리가 되었다. 2016년 김대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부장이 되어 있을까 동네 통닭집 김사장이 되어 있을까 청년학도가 김대리가 되…
흑인 여성 예술가로 살기
흑인 여성 예술가로 살기-나는 예술가입니다.미국의 흑인 조각가 에드모니아 루이스(Edmonia Lewis, 1845~1911년경)는 자신의 조각 작품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북미 유색인종 미술가로서, 치퍼와족 인디언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오벌린…
사료실에서 만난 후배
사료실에서 만난 후배박향란(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참이다.그 아이를 처음 만난 때가 어느덧 30여 년 전.요즘 그 아이를 사료실에서 문득 문득 다시 만난다.필자가 대학 3학년 때 시 좀 쓴다는 1학년 후배가 들어왔다. (여기서 들어왔다는 말…
일제시대 군사 흔적을 찾아서
말보다 건축, 생각보다 산책- 일제시대 군사 흔적을 찾아서 -이보름(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가덕도의 토치카를 보기 위해서는 물때를 맞춰야한다. 토치카가 가덕도 대항 해안가에 있어 썰물이 되어야 건너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한 물때에 맞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