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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실에서 만난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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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조회수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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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실에서 만난 후배


박향란(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참이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때가 어느덧 30여 년 전.

요즘 그 아이를 사료실에서 문득 문득 다시 만난다.

필자가 대학 3학년 때 시 좀 쓴다는 1학년 후배가 들어왔다. (여기서 들어왔다는 말은 교내의 범문학사회를 말한다.) 키 크고 잘생긴 아이, 수줍던 아이, 착했던 아이, 볼이 잘 붉어지던 아이, 고민 많았던 아이, 이마에 떡하니 ‘나 감수성’ 이라고 적힌 듯한 그 아이.

같은 과도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지만 좁은 대학사회 안에서 문학패거리들은 어차피 다 한 통속, 뺀질뺀질한 우리 과 후배들 보다 난 그 아이가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 포함 서넛의 스터디의 선배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87년 그 뜨거웠던 거리의 여름도 지나고 바야흐로 학원민주화투쟁이 단풍처럼 불이 붙어버린 그 해 가을, 우리는 스터디방이 아니라 주로 운동장, 학회실, 술집에 있었다. 새끼들(스터디의 후배들)과 나의 고민을 서로서로 들어주며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 ‘선동저수지 가자!’ 하는 바람에 우리는 대동제 때 사용했던 깃발을 들고 히히 호호 거리며 학교를 나오다 누가 찍어준 그날의 사진만이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 아이와의 추억이다.


얼마 전 새 수집사료를 정리하다 나온 ‘부대문학’ 창간호. 항쟁의 열풍이 전 사회를 휩쓸었던 시절, 88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교내 문학인(?)들 끼리 문학과 운동을 접목하는 공동창작집단을 만들어보자고 생긴 것이 동인지 형태의 공동창작집단 ‘부대문학’이다. 그 아이가 편집을 맡은 책 ‘부대문학’ 창간호를 다시 보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채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하는 놀람과 함께 뚜렷한 세 글자 양영진......, 가슴에 와 박혀 다시 저릿하다.


전방입소거부 투쟁의 선봉에 섰던 보복으로 소집영장 하루 만에 군에 불려갔다가 방위병으로 있었던 그해 10월 10일 재료관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망월묘지엔 못 갔다. 작년에 광주 갈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누워있는 그 아이를 봤다. 맑은 사람일수록 빨리 죽는 흐린 물.......사람과 사회 중 과연 누가 더 불온한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끝머리를 장식해서 유명해진 한 구절, 네크라소프의 시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 그 구절만이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는 나의 유일한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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