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열사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임기윤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임기윤
임기윤 목사는 암울한 유신치하인 1975년 2월 16일 범교단적으로 40 - 50명의 목회자가 조직한 '사회정의구현 부산 기독인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함석헌 선생, 서남동 목사, 문동환 목사 등의 초청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반유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이를 이유로 국군보안 사령부 부산분실에 참고인으로 불려간 1980년 7월 19일 이후 3일만인 21일, 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가 26일 순교하였다. 보안사 측에서는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고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평소 목사는 혈압이 높지 않았으며 부인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뒷머리 왼쪽이 3센치 가량 찢어져 있고 그 곳에 피가 흘러 말라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임기윤 목사는 보안사 내에서의 폭행, 고문 등 가혹행의로 인하여 운명하였거나 설혹 육체적 고통은 당하지 않았더라도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공포분위기에서의 정신적 고문으로 운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필
1922년 12월 27일 평남 용강군 오신면 석정리에서 출생1951년 중앙신학교 신학과 졸업
1961년 중앙신학교 사회사업과 졸업
1966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목사 안수
1971년 ∼ 72년 부산기독교 연합회 총무
1971년 7월 2일 부산 기독교교회 협의회 총무
1979 - 80년 부산신학교 운영이사장
1979 - 80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앙연회 부산지방 감리사
1980년 7월 19일 국군보안사령부 부산분실에 연행됨
1980년 7월 21일 부산 통합병원으로 옮김
1980년 7월 26일 운명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장준하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장준하
오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으로 재야 대통령이라는 칭송까지 들은 민족의 지도자였던 장준하 동지는 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구축해 갈 때 가장 선두에 서서 민주세력들을 결집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74년 1월에는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74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후 지속적인 유신헌법 철폐를 목적으로 한 개헌운동의 노선단일화를 위해 민주통일당을 탈당하였다. 그러던 중 75년 8월 17일 장준하 동지가 약사봉 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자 박정희 정권은 등산을 하다가 실족, 익사한 것으로 사건을 서둘러 종결지었다. 이는 재야 지도자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암살이라 볼 수 있다.
프로필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 출생1932년 평양 숭실학교 입학
1940년 4월 일본 동경 일본 신학교에 입학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가다 탈출
1945년 1월 중국 중경에서 광복군에 편입, 광복군 대위에 임관됨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으로 입국
1947년 12월 조선 민족 청년단에 참가
1964년 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에 참가
1965년 조국수호협의회에 참가, 한일조약 반대투쟁에 가담
1967년 6월 옥중 출마로 동대문 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박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함
파주 천주교 나자렛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상순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상순
보성고 김철수 동지의 고교 선배인 정상순 동지는 노동자로서 여러 직종에 종사하였다. 91년 계속되는 분신에 괴로워하던 중 고교 후배인 김철수 동지가 분신하여 전남대 병원에서 투병을 하자 병원을 찾아와 두 번씩 울고 갔다고 한다. 5월 22일 전남대 병원 영안실 위에서 "노동자여 투쟁하라. 시민들이여 함께 호흡하고 함께 외치고 투쟁하자"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후 투신하여 5월 29일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하였다.
프로필
1966년 11월 1일 전라남도 보성 출생1985년 2월 보성고등학교 졸업
1991년 5월 22일 오후 7시 25분경 전남대 병원 영안실 위에서 "노태우 물러가라"며 투신
1991년 5월 29일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상율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상율
88년 4월 결성한 돈암, 동소문동 세대위는 1년동안 수차례의 강제철거와 조합이 고용한 깡패들과의 계속되는 충돌에도 불구하고 삶의 자리를 찾기 위한 불굴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정상률 동지가 운명한 2월만 해도 2번의 강제철거를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막아내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던 1989년 2월 18일 돈암동 세입자 김성원씨 집에 가옥주 신광선씨가 술에 취한 채 당장 집을 비우라고 소란을 피우자 김성원씨의 부인이 공포에 질려 세입자 대책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였고, 달려온 동지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이야기하자"며 다가갔다. 그때 신광선은 우유각 속에 감추었던 식칼을 꺼내어 동지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급히 고대 혜화병원으로 옮겼으나 동지는 운명하고 말았다.
프로필
1941년 7월 10일 충남 논산군 강경읍 출생1970년 이후 양복 재단사 생활
1989년 돈암, 동소문동 세입자 대책위원회 부회장 역임
1989년 2월 18일 술에 취한 가옥주가 휘두른 칼에 찔려 운명
용미리 서울시립 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성규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성규
87년 공정선거 감시단으로도 활동을 하였고, 88년 청주지역 민주청년연합에서 지역운동을 하던 정성규 동지는 8월 통일문제 시민강좌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함께 매포수양관에서 수련대회중 돌연한 사고로 익사하였다. 다음은 추모제에서 후배가 평소 동지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동지를 잃는 아픔 속에서도 억센 생명력이 다시 일어서야 함을 알기에 못다한 말씀이 무엇임을 알기에 눈물을 훔치고 나서렵니다. 형! 지켜보고 계시지요. 시련의 칼바람 속에서도 청년이 조각난 강토에 굳세게 서게 되는 그날까지 형 함께 하시는 것이지요. 죽어서도 우리들 속에 살아계시는 생명을 압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프로필
1965년 출생1983년 충북대학교 철학과 입학
1985년 인문대 학생회장 당선
1986년 학내시위 주도로 구속, 집행유예 선고
1987년 청주 민청 총무
1988년 청주 민청 조직부장
1988년 8월 14일 수련회 도중 익사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연관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정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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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1966년 12월 강원도 삼척군 출생1973년 3월 철암 국민학교 입학
1978년 2월 대구 남산국민학교 졸업
1981년 2월 대구 경구중학교 졸업
1984년 2월 포항 대동고등학교 졸업
1986년 5월 군입대
1987년 12월 4일 운명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조영래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조영래
동지는 서울대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 삼성재벌 밀수 규탄, 6. 7부정선거 규탄, 삼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공명선거쟁취 등의 학생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후 6년 가까이 피신생활을 하던 중 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고, 특히 3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전태일 평전(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하는가 하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망원동 수재사건, 대우어패럴사건, 이경숙 사건(여성 조기정년제 철폐)등을 변론하였고, 변호사 협의회 인권보고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또한 보도지침사건, 박길재 사건(상봉동 진폐증 보상문제)을 담당하였으며, 기타 노동, 빈민, 공해, 학생운동 관련사건 등 인권변호에 전력하던 동지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만들고 나서 지병인 폐암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한 채 운명하였다.
프로필
1947년 3월 26일 대구에서 출생1965년 3월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
1969년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입학
1971년 10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1983년 변호사 개업, 전태일 평전 집필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변론
1990년 9월 폐암 3기로 입원
1990년 12월 1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채광석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채광석
1975년 4월, 서울대 김상진 동지가 할복자살하는 등 유신반대운동이 고조되자,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여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다. 5월에 김상진 동지 추모시위가 힘차게 벌어지자 사범대 시위책임을 맡았던 채광석 동지는 체포, 구속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40여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이때의 고문체험으로 <애국가>, <검은 장갑> 등의 시를 쓰기도 했다. 동지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을 계기로 이후 타계할 때까지 문학운동을 비롯한 문화운동 전반에 걸쳐 맹렬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문화예술분과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박노해 시인을 발굴하여 민중문학의 한 맥을 이루게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던 동지는 1987년 '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민주시민대동제'에 참여하였다가 뒤풀이를 끝내고 귀가하던 길에 폭주하는 택시에 받혀 세상을 떠났다.
프로필
1948년 7월 11일 충남 서산군 안면면 출생196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입학
1975년 5월 김상진 동지 추모시위로 구속
1983년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 시작
1984년 3월 14일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 실행위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1985년 시집 '밧줄을 타며', 사회문화론집 '물길처럼 바람처럼' 발간
1987년 7월 12일 폭주하는 택시에 받혀 운명
팔당 공원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최정환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최정환
척수 장애와 교통사고로 인해 1급 1호의 중증장애인이었던 동지는 서초구 방배역 부근에서 오토바이에 가판을 달고 테이프 노점상을 시작하여 삶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서초구청의 노점상 탄압으로 생활이 어려웠다. 그러한 가운데 95년 3월 8일 오후 8시 30분경 서초구청의 살인적인 단속에 장사하는 스피커와 밧데리통을 빼앗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그날 오후 9시 30분경 서초구청을 방문 담당자를 면담 후 압수된 물품을 찾으려 했으나 심한 모멸감만 받고 좌절당했다. 이에 분노한 동지는 결국 9시 45분경에 분신하고 3월 21일에 운명하였다. 세계화를 지향한다는 문민정부에서조차 짓밟힐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의 생존권을 지키고자, 동지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이다.
프로필
1959년 출생1994년 6월 방배역 부근에서 테이프 노점상 시작
1994년 6월 노점단속으로 전치 8주 부상
1995년 3월 8일 9시 45분경 서초구청의 살인적인 노점상 단속에 분신으로 항거
1995년 3월 21일 새벽 1시 50분 운명
용인 가톨릭 묘지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최종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최종길
중앙정보부(前 국가안전기획부)는 73년 10월 25일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 명단에는 73년 10월 19일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동지도 들어 있었다. 이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해명은 동지가 "범행사실을 자백한 후 국내 간첩조직망에 대한 여죄를 조사받던 중 용변을 보겠다고 변소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에 대한 국내외적인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간첩단 조작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중앙정보부의 연락을 받고 동지가 출두하기 이전 동베를린을 거쳐 평양에 다녀온 것으로 사건 조서가 꾸며져 있었고, 투신했다는 현장을 공개하지 않고, 부검을 완강히 거부한 속에서 유가족을 협박해 장례를 급히 치루게 만든 점은 고문에 의한 타살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으로 간주된다.
프로필
1932년 충남 공주 출생1955년 3월 서울대학교 법대 졸업
1955년 5월 서울대학교 법대 석사과정
1958년 서독 쾰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1962년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
1973년 10월 16일 중앙정보부에 출두
1973년 10월 19일 조사받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