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열사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한상용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한상용
한상용 동지는 우리들의 삶은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였고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려 노력했다. 참된 삶과 주인된 삶에 항상 고민하며 참교육을 갈망하는 예비교사로서 잘못되어 가고 있는 초등교육을 바로 잡고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투쟁했다. 그러던 동지는 금식을 하고 임용고시 반대투쟁 승리의 염원을 담은 종이학을 접는 등 계속적인 투쟁을 하다가 1993년 11월10일 10시경에 분신하여 전신 3도 화상과 내출혈로 전대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운명하였다.
프로필
1970년 전남 해남 출생1990년 광주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입학 노래패 '에루얼싸' 가입 교육종합대책안 분쇄를 위한 1학년 대책위장 역임
1992년 사회 교육과 제5대 학생회장 역임
1993년 동아리 ESF 가입 초등교육개혁과 교대교육정상화를 위한 4학년 대책위원회 위원장 활동
1993년 11월10일 분신·투신,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한영현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한영현
한영현 동지는 한양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어려운 가정활동에도 불구하고 민속문화연구부에 가입, 82년 부천에서 야학 활동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러던 83년 1월, 부천 야학에서 활동한 선배의 조사와 함께 동지가 연행되어 구타를 당하며 조사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 후인 4월 1일 수원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아 늑막염으로 극도의 쇠약한 몸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2일에 경찰서에 오라는 소식을 듣고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2-3주 후에 동지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그때야 동지가 강제징집당한 것을 알았다. 1983년 6월 18일에 휴가를 나왔는데 동지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 "나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며 81학번뿐만 아니라 72학번까지도 여파가 미치는데 아마 커다란 배가 침몰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고, 두개골이 없는 참혹한 모습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프로필
1962년 3월 1일 인천 출생1981년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
교내 써클 민속문화연구회에 가입
대학연합 민속문화연구회와 야학도 함
1983년 4월 2일 강제징집
6월 15일 휴가 중 녹화사업 폭로
7월 2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한희철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한희철
한희철 동지는 서울대에 입학 후 카톨릭 학생회와 성남시 대학생연합회, J.O.C, YMCA 등에서 활동을 하다가 휴학 후 입대를 하였다. 그후 82년 12월 1일 보름간의 휴가를 나와 당시 외대 시위주동자로 수배 중인 김무현 동지를 만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었는데, 이후 김무현씨가 검거되고, 그 과정에서 편지가 들통나게 된 일로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보안대에서 5일간 취조를 받고 83년 12월 10일 복귀하였으나, 바로 그 다음날인 12월 11일 새벽 4시 30분경, 5사단 문서보관 창고 앞 참호에서 근무를 서던 중 총기자살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가슴에 난 3각형의 총탄자국과 보안사의 조사 사실을 계속 은폐했던 점으로 의문이 가고, 설령 자살했다 해도 보안사의 녹화사업이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프로필
1961년 2월 1일 경남 마산에서 출생1979년 2월 철도고등학교 졸업
3월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 입학 (철도청 장학생)
1982년 12월 1일 군에 입대
1983년 12월 11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허원근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허원근
1984년 4월 2일, 전방 GOP부대 중대장 전령병을 하던 허원근 동지가 유류고 뒤에서 총을 가슴좌우측에 각 1발씩, 두부에 1발 등 세발을 맞고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대해서 군당국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M16 세발을 그것도 단발로 세번씩이나 쏘아서 자살을 할 수는 없고, 사건 직후 중대장이 세번이나 총성 청취시간을 정정하여 교육을 시켰고, 총성은 두번 밖에 나지 않았다고 하는 점, 탄피의 수가 틀리고, 중대장의 총에 대한 화약검출 실험만을 제외시킨 점, 또한 동지는 다음날 첫 휴가를 나가기로 되어 있던 점 등은 자살이라는 군당국의 발표를 믿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중대장 또는 다른 누구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필
1962년 5월 15일 전남 진도 출생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참가
1981년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
부산 수산대학교 입학
1983년 군 입대
1984년 4월 2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황정하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황정하
83년 전두환 정권의 학원탄압이 그 도를 더해가자 이에 굴하지 않고 10여회의 교내 및 가두시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그해 11월 11일, 미 대통령 레이건의 방한이 예정되었다. 이에, 민족이 영원한 외세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독재정권의 확고한 기반이 마련되려는 위급한 상황임을 깨달은 황정하 동지는 '전두환 정권 퇴진, 레이건 방한 저지 투쟁'을 위해 서울대생과 함께 시위 주동을 결정했다. 83년 11월 8일 낮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고자 도서관 6층 창문을 통해 밧줄을 타고 5층 배란다로 내려오려 했던 동지가 창틀에 올라서려 했을 때, 열람실에 진을 치고 있었던 사복경찰과 수위들이 달려들었고, 이에 동지는 추락, 뇌골절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을 동지의 생명은 아랑곳없이 학생들의 접근을 제지, 시위 주동 동료 학생 체포에만 급급한 채 그대로 방치해 두기까지 했다.
프로필
1960년 12월 5일 출생1979년 부산 경남고등학교 수석 졸업
197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수석합격했으나 색약으로 탈락, 1년간 재수
1980년 서울대학교 공과계열 입학
1981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도시공학과 편입
1983년 11월 8일 교내 시위 중 도서관 5층 난간에서 추락
1983년 11월 16일 오전 11시 22분 운명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황혜인
민주열사 (학생운동가)
이름 : 황혜인
1996년 4월 16일 성균관대학교 율전 캠퍼스 학생회관 3층 여학생 화장실에서 물리학과 95학번 황혜인 동지가 분신, 자결하였다. 언론은 황혜인 동지의 죽음을 총선패배에 대한 비관자살로 보도했으나, 동지가 남긴 유서, 글들을 살펴보았을 때 동지는 김영삼정권의 민중탄압에 맞서 노동해방, 민중해방을 위해 더욱 힘차게 투쟁할 것을 살아남은 이들에게 절규하기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바쳐 산화해 간 것이다.
프로필
1976년 강원도 고성 출생1995년 속초여자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입학 동아리 행소문학회 가입
1996년 동아리연합회 선전부장
1996년 4월 16일 오후 12시 30분 노동해방을 염원하며 분신, 운명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강상철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강상철
강상철 동지는 1964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해 1986년 목포역 광장에서 분신하였다. 동지는 80년 5월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의 비정함이 정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으며 각 민주단체의 각성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삼민(민주, 민족, 민중)주의를 좌경, 용공으로 모는 전두환 및 5·18 쿠데타 주동자를 몰아내고 민주인사 사면복권 및 석방과 직선제 개헌단행을 촉구했으며, "정의로운 죽음은 의로운 죽음이요, 승리의 죽임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전 민중의 함성이며, 동참이며, 투쟁의 길이며, 승리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라고 확신하며 장렬히 산화하였다.
프로필
1964년 3월 24일 전라남도 해남 출생1986년 목포전문대학교 재학 중 미등록 제적
목포 사회운동 청년연합 사무차장 역임
목포 평강교회 청년회 총무
1986년 6월 6일 목포역 광장에서 민주화운동 탄압 중지와 5·18 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선언을 외치며 분신
1986년 6월 26일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고정희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고정희
1988년 1월 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백악관, 독일대사관 등에 '노태우 부정집권'을 고발하는 투서를 한 고정희 동지는 88년 3월 경찰에 연행되어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서 조사를 받다가 강남 성모병원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된 뒤, 5월 13일 오후 5시 40분경에 병원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 병원측의 주장에 따르면 고씨는 사건 당일 10층 정신병동 정문을 통해 나와 비상계단을 이용해 9층으로 내려간 뒤 공사 중인 신축공사장 베니어판(구멍)을 뚫고 나가 투신, 2층 구름다리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과 증언들에 의하면 병실안에서 인권위원회, 대사관 등에 탄원서를 쓰는 등 처참하게 몸부림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프로필
1960년 12월 4일 전남 광주 출생1979년 3월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 입학
1986년 1월 졸업후 IBM입사 (호주 파견근무)
1987년 3월 퇴사 후 연세대학교 정외과 편입학
1987년 10월∼12월 민족통일 애국 청년단 중앙본부 기획위원회에서 활동
1988년 1월 청와대, 미대사관, 각 언론기관에 부정선거에 관한 투서 및 미대사관에 투석 계획
1988년 3월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 연행 후 정신병원에 강제수용
1988년 5월 1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투신자살로 발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기설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기설
동지는 1988년 9월 성남민청련 창립대회에서 강연을 듣고 즉석에서 성남민청련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성남민청련 노동분과 소속, 지역 노동운동 단체들을 지원 연대하는 사업에 열의를 갖고 참여하다 민청련이 해체되면서 성남노동자의 집에서 교육상담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동지는 노동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조광피혁 등에 입사했으나 성남 민청련에서의 활동이 드러나 쫓겨나곤 하였다. 91년 1월부터 전민련에서 사회부장으로 일하게 되어 활동하면서 노태우정권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민족적 폭압을 새삼 인식하였으며, 강경대 동지의 죽음 이후 범국민 대책회의에 참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던 중 분신을 결행하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여러 사람을 불법연행하여 강압수사를 벌여 유서대필이라는 상식이하의 조작으로 동지를 두 번 죽이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프로필
1965년 경기도 파주 출생1983년 인천 수도전기통신고 중퇴
1984년 대입검정고시 합격
1988년 성남 민주화청년운동연합 가입
1989년 성남 노동자의 집에서 상담간사로 활동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본부 사회부장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폭력살인 만행 노태우정권 타도하자" 고 외치며 분신한 후 투신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길호
민주열사 (재야운동가)
이름 : 김길호
김길호 동지는 80년 광주항쟁 이후 기독교 농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특히 86년 7월 4일부터 87년까지 무안에서 지속된 '농산물(마늘, 양파) 제값받기 투쟁'에서 선봉대로서 열심히 투쟁에 참가하였다. 87년 12월 20일. 무안에서의 대통령선거 무효투쟁시 오후 5시경 무안읍에서 광주 방면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논두렁에 동지를 처박고 집단구타하였다.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5일간의 구류를 살았고, 구타로 인한 후유증으로 무안읍 유성병원을 거쳐 목포 성 콜롬반 병원으로 옮겼으나 계속 악화되어 88년 3월18일 광주 기독병원에 입원, 결국 회생을 하지 못하고 3월 25일 "나는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끝으로 운명하였다.
프로필
1954년 1월 18일 전남 무안 출생목포 중학교 졸업
부산, 서울 등에서 장사를 했으나 실패
1977년 귀향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참여 이후 기독교 농민회 회원으로 활동
1986년∼87년 7월 4일 마늘, 양파, 생산비 보장 및 전량수매 촉구대회 때 선봉에서 활약
1987년 12월 20일 부정선거 규탄 및 선거무효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무안경찰에 잡혀 집단구타 당함
1987년 12월 24일 구류 5일을 살고 풀려나옴, 통원치료
1988년 3월 15일∼25일 광주기독병원 입원
1988년 3월 25일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끝내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