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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25주년을 맞아

작성자 민주공원
작성일2004-10-15
조회수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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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철폐”“독재타도”를 외치면 분연히 일어섰던 부마민주항쟁이 4반세기의 세월을 지나 어언 25주년을 맞았다.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돌이켜 보면 악랄한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은 민족 분단과 전쟁의 시련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군사독재와 반민주세력이 권력을 쥐고 민주세력을 억압하는 배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4_19항쟁은 민주주의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으나 곧바로 일어난 5_16군사정변으로 부정되었다. 박정희 군사독재는 정통성의 부재를 경제성장의 실적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한일회담으로 식민지배의 대가를 헐값에 판 박정권은 ‘조국근대화’라는 구호 아래 개발독재를 강행하였다. 박정권은 이른바 ‘선성장 후분배’를 앞세워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억압하면서 관료재벌독점체제를 구축하였다. 개발독재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거세지자 박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쿠데타를 감행하였다. 유신독재는 폭력으로 지탱되는 체제였다. 국민의 기본권은 전면 부정되고 사회는 거미줄같은 감시망으로 포위되었다. 시민사회에 대한 군대식 통제는 국민 개개인의 내면까지 억압하였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다 감옥으로 끌려가는 사람은 늘어갔지만 질식할 듯한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시민들은 반유신 민주화운동과 쉽게 결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이 유신독재의 사슬을 끊었다. 침묵하던 시민이 4_19이후 최초로 시민항쟁에 나섰다. 유신독재가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진압한 듯 하였으나 부마항쟁의 파장은 권력의 심장부를 파열시켰다.

이로써 박정희 유신독재는 일거에 붕괴되었다. 이 얼마나 빛나는 쾌거인가? 이 얼마나 위대한 시민의 승리인가? 부마항쟁은 이후 5_18민중항쟁, 6월민주항쟁을 거쳐 오늘에 이어지는 기나긴 투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출발점이었다.

부마항쟁 25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여전히 과거 청산을 거부하고 낡은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민주화를 가로막고 나서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전쟁이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에 나섰던 시민들이 꿈꾸던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더 깊은 성찰과 용기를 갖고 자주적 민주주의의 발전과 분단 극복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2004년 10월 16일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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