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의 '부마항쟁 인권침해 사건'의 결정 발표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본문
국가는 부마항쟁에 대해 전면조사하고, 민주헌정의 기본질서를 공고히 하라.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부마항쟁 인권침해 사건’의 결정 발표에 즈음하여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통합창원시)의 학생, 시민항쟁은 3.15의거와 4.19혁명 이후 최초의 민중적 반독재투쟁이며, 마침내 유신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반영되어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한 세대가 지나서야 처음으로, 그 일부나마 세상에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2일, 간략한 보도자료로 ‘부마항쟁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 주에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이 사건의 진실 규명 결정문 전문을 받은 바 있다. 50면에 달하는 이 결정문과 부수적인 참고자료를 국민 앞에 공개하며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부마항쟁이 ‘잊혀진 역사’가 되어 온 과정 그 자체가 우리 현대사와 민주주의의 수준을 드러낸다는 것을 상기하고자 한다. 부마항쟁은 그 항쟁의 직접적 결과인 10.26사태와 유신체제의 붕괴로 인해 오히려 역사의 그늘에 묻혔다. ’80년대 6월항쟁 이후 1989년 부마항쟁10주년을 맞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태우·김영삼 정부하에서 5.18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보상이 다 이루어지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부마항쟁20주년인 1999년에는 김대중 정부가 처음으로 ‘불순한 폭도들의 난동’인 ‘부마사태’를 ‘부마항쟁’으로 명명해 주었지만, 아무런 진상조사도, 개개인에 대한 명예회복도 피해구제도 없었다. 2000년의 ‘민주화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에관한법률’은 부마항쟁의 ‘주동자들’ 조차도 민주화관련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여 많은 피해 당사자들을 절망하게 했다. 이제 노무현 참여정부하에서 제정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에 의하여, 이명박 정부하의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부마항쟁의 인권침해에 대하여 조사가 이루어지고 진실규명이 되었으니 문자 그대로 만시지탄이나 감개가 무량하다.
이 조사는 겨우 4개월 남짓 기간 동안 단 두 명의 조사관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 애당초 부마항쟁의 규모나 역사적 무게에 비추어 터무니없는 조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조사 대상 규모에 있어서 1,500여명의 공식적 연행자, 100명에 육박하는 기소자가 있는 사건의 피해자 조사는 20명에 불과하다. 조사 내용에 있어서 그 20명에 대해서도 진압, 조사 과정의 폭행, 고문 등 인권침해 이후 30년간 안고 살아 온 정신적 후유증이나 가족관계 파괴, 블랙리스트에 의한 구직난에 따른 고통 등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경찰은 물론 부산시장, 경남지사, 군과 정보관계자, 경찰 등을 조사하여 부마항쟁을 처음부터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과 연루된 것으로 조작하려 했다는 것, 심지어 시위군중이 만든 사제총기가 발견되었다고 한 것이 마산경찰서장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 공수부대와 39사단 병력 투입에 의한 시민 진압은 위수령 이전의 불법 거병이라는 것 등은 군사력으로 다시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유신쿠데타에 의해 성립한 유신체제가 얼마나 불법적으로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며 국민주권을 유린했는지를 드러낸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적 병력동원의 지휘체계를 밝히지 못했으며, 당시 중앙정부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동향에 대해서도 접근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진실화해위원회가 부마항쟁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스스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국가에 대해 다시 부마항쟁에 대한 조사를 권고한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고 환영한다.
또한 동 위원회가 이미 밝힌 바, 공권력에 의한 명백하고도 심각한 불법적 인권유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사건과 달리 국가에 대한 권고사항에 ‘사과’를포함하지 않은데 유의하고자 한다. 이미 드러난 국가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현재의 국가가 일차적으로 해당 당사자 국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수임기관으로서 국가의 마땅한 예의에 속한다. 그 예를 행하는 것은 현재 국가의 몫으로 남기고, 향후 국가의 충실한 조사 이후에 사과하는 것을 용인할 의사를 밝힌다.
동 위원회가 부당한 인권유린을 확인한 사람에 대한 후속 조치로서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조치를 권고한 것 또한 마땅한 것으로 환영한다. 이러한 정당한 조치가 행해지지 않으면 피해가 확인된 개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전국과 심지어 해외에 거주하는 부마항쟁 피해와 가해 당사자에 대한 전면적 조사를 실시한 후에 스스로 합당한 명예회복과 구제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차제에 부마항쟁의 의미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1979년 부마항쟁은 단순히 수많은 과거사의 하나가 아니며, 단순히 심각한 인권유린 사태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3.15의거와 4.19혁명 이후 두 번이나 군사정변에 의해 헌정질서가 파괴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한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부마항쟁의 전면 조사와 후속 조치는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는 국가 자체의 헌법정신 유린과 법질서 파괴를 바로잡고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를 보다 공고히 하는 데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우선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1. 정부는 불행한 현대사로부터 냉혹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부마항쟁 진압, 수사 과정의 인권유린은 물론, 부마항쟁 전개과정과 그 전후의 복합적 배경, 결과 등을 포함하여 그 총체적 전모를 조사해야 한다.
2. 각 정당과 국회도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부마항쟁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피해자 구제 등의 후속 조치에 뜻을 모으고, 정치 퇴행의 방지 및 민주헌정질서의 공고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라.
3. 부산시와 의회, 그리고 창원시를 포함한 경남도 자치단체의 집행부와 의회 또한 역사적인 부마민주항쟁의 현장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 이행을 위해 적극 나서라. 그리고 이 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우리 지역 민주화 운동사의 에너지를 자치의 심화와 민주화의 전진을 위한 문화적 자산으로 바꿀 비젼을 마련하라.
우리들은 이상과 같은 최소한의 당연한 요구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겸허하고 성실하게 귀기울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지역민은 물론 국민과 더불어 이후의 추이를 지켜보며 이후의 보다 구체적이고 합당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2010년 7월 14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부산)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창원)